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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웅’ 정성화, “절반의 익숙함, 절반의 새로움”
임수연 2022-12-21

정성화는 14년간 뮤지컬 <영웅>의 안중근을 아홉 시즌에 걸쳐 연기했다. 뮤지컬 <영웅>을 감명 깊게 본 윤제균 감독과 뒤풀이 현장에서 영화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몇년 뒤, 정성화가 다음 시즌 무대에 섰을 때 정식으로 캐스팅 제안을 받았다. “단언컨대 정성화보다 이 역할을 잘할 수 있는 배우는 한국에 없다”는 윤제균 감독의 신뢰는 결과물을 통해 증명됐다. <영웅>은 뮤지컬과 영화, 매체의 차이를 고민하며 치열하게 캐릭터 표현을 고민한 정성화로 인해 성립된다.

사진제공 CJ ENM

-영화 <영웅> 프로젝트와 처음 인연을 맺었던 때를 기억하나.

=<댄싱퀸> 크랭크업날 회식 자리에 윤제균 감독님이 오셨다. CJ ENM 영화 파트 분들도 소개해주시더니 “여러분, 제가 5년 안에 정성화 주연의 영화를 만들겠습니다”라고 장담하는 거다. 그리고 딱 5년 뒤 영화 <영웅>에 캐스팅됐다. 약속을 지키신 거다. 처음 영화화 소식을 전해주실 땐 캐스팅 얘기는 따로 안 꺼내셨는데, 어느 날 JK필름 사무실에서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다. 그때 시나리오를 주시면서 “네가 안중근을 연기해줬으면 좋겠다”고, 대신 체중을 감량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석달 만에 86kg에서 14kg을 감량한 후 촬영에 들어갔다.

-뮤지컬 연기와 영화 연기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뮤지컬 <영웅>과 영화 <영웅>의 연기는 어떻게 달랐나.

=뮤지컬에는 몽타주와 디테일한 미장센이 없기 때문에 상상에 맡겨야 하는 경우가 꽤 있다. 영화는 모든 표현 방식이 구체적이다. 때문에 뮤지컬처럼 연기하면 화면이 비어 보인다. 무대에서는 관객이 배우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없지만 영화에서는 눈물이 어느 방향으로 흐르는지, 노래가 시작되면서 어떻게 감정이 변하는지 알 수 있다. 노래를 부를 때도 아주 디테일한 감정을 담아야 한다. 윤제균 감독님이 절반의 익숙함과 절반의 새로움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한 이유다.

-영화의 주연을 맡는 건 배우에게 또 다른 영역의 과제였겠다.

=윤제균 감독님이 주인공은 어떤 지점을 향해 달려가기 때문에 강강강강으로 연기하면 배우도 지치고 관객도 지친다고 말씀하셨다. 때문에 담백하게 연기하다 어디에서 빵 터뜨릴지 계산할 줄 알아야 한다고 조언해주셨다. 가령 검사와 대화할 때 나는 눈에 핏대를 세우며 연기하고 싶었지만 감독님은 무표정으로 아무 감정을 넣지 말고 대사를 치라고 했다. 나중에 영화를 보니 감독님 말이 맞았다. 현장에서 좋은 리더도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각자 맡은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 역시 주연배우의 역할이다. 영화의 주연배우는 전체를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이번 작품을 하면서 깨달았다.

-<레미제라블>처럼 라이브 녹음을 하기로 결정하면서 직면한 기술적 과제들이 있었을 텐데, 배우에겐 어땠나.

=뮤지컬 노래는 정제된 음향과 목소리로 전달된다. 그 음향은 무대 위의 배우도 들을 수 있다. 영화는 음악이 인이어를 통해 전달된다. 생목소리로 노래를 해야 하기 때문에 행여나 음 이탈이 발생하진 않을지 의심하며 노래했다. 몸에 찬 마이크 3개, 그리고 붐 마이크까지 총 4가지 루트로 수음을 했다. 파카에 소매 스치는 소리나 발소리처럼 현대적인 엠비언스가 들어가지 않도록 조치도 취해야 했다. 그리고 카메라가 가까이 있기 때문에 노래를 속삭이듯 작게 불러야 한다. 감정은 같지만 더 세밀해야 한다.

-하지만 라이브 녹음을 해야 확실히 배우의 감정이 잘 담길 수 있다.

=노래에는 반드시 배우의 호흡이 담겨야 한다. 나중에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면 싱크를 맞추기가 어렵다. 뮤지컬영화의 노래는 대사처럼 들려야 하는 구간과 실력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 구간이 있다. 전자에서는 감정이 우선되어 관객이 인물의 내면에 빠져들게 해야 한다. 대표적인 예가 나문희 선생님의 노래다.

-안중근 의사를 연기하기 위해 시나리오 외에 참고한 텍스트들이 있나.

=2009년 뮤지컬 <영웅>에 캐스팅되자마자 중국에 갔다. 여순감옥, 하얼빈역 등에 실제 가보니 안중근 의사를 연기한다는 것의 무게감을 알겠더라. 안중근 기념관에 있는 모든 글과 <안응칠역사> <동양평화론> <안중근 평전> <불멸> 등을 읽으며 작품을 준비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안중근을 재조명하는 또 다른 책들이 나왔다. 최근엔 김훈 작가의 <하얼빈>을 읽으며 안중근 의사의 또 다른 면모를 느끼게 됐다. 안중근 의사는 내게 하늘에 떠 있는 태양 같은 분이다. 볼 수는 있지만 만질 수도 가닿을 수도 없다. 그럼에도 그쪽을 향해 걸어가게 만든다. 흔히 안중근 의사 하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투사 이미지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은데, 실제로는 문인, 철학가, 사상가 같은 면이 더 많았다. 그런 부분이 연기할 때 큰 도움이 됐다.

-윤제균 감독이 이런 말을 하더라. 무명의 개그맨에서 출발해 뮤지컬계의 톱티어 배우가 되기까지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굉장히 궁금하다고. 유일무이한 케이스이기 때문에 단지 재능 있고 성실하다는 것만으론 설명이 되지 않는다.

=개그맨일 때, 연기를 할 때 나는 아무리 잘해봐야 중간인 사람이었다. 무엇을 해도 위쪽으로 올라갈 수 없었고, 누군가 내가 위로 올라갈 수 있을 거라 믿어주지도 않았다. 그런데 뮤지컬을 만나면서 위를 바라볼 수 있다는 꿈을 꿨다. 그때부터 악착같이 했다. <맨 오브 라만차> 산초 역 제안이 들어왔을 때 나는 돈키호테를 하고 싶다고 했다. 실제 오디션 현장을 미리 살핀 후 근처에 방을 구해 걸음 수까지 계산하며 오디션을 준비했다. 캐스팅 후 연습도 제일 열심히 나갔다. 오전 10시 시작이면 8시부터 가서 준비하고, 연습이 끝나면 남들보다 1시간 더 남아 있었다. 조승우씨가 나보고 징글징글하다고 할 정도였다. 내가 중간이라는 감옥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을 꼭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맨 오브 라만차>가 그 꿈을 이루게 해줬다면, 꿈을 공고히 해준 작품은 <영웅>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저 위로 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그 꿈이 지금 이 순간 영화 <영웅>을 통해 이루어질 줄은 몰랐다. 지금의 나를 만든 건 절실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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