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는 서울에 살고만 있어도 성공한 시대가 될 거야.” 90년대 후반, 친구들하고 나눴던 대화 중에 들은 얘기다. 그 시절 이공대생들은 첫 직장이 지방인 경우가 많았고, 상대가 포함된 문과 계열은 주로 서울이 첫 직장이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을 졸업한 우리는 그렇게 사소한 차이로 직장의 위치가 갈렸고, 지방으로 발령받은 친구들은 서울에 남은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그러면서 웃기는 했어도 이렇게까지 서울만 남은 공화국의 모습으로 한국이 갈 줄은 아무도 몰랐다.
노무현 정권 때 엄청나게 많은 학교가 문을 닫았고, 폐교를 사들여서 뭔가 행사를 하는 게 유행했다. 그때 우리가 잘못한 거라고 생각한다. 싼값에 좋은 건물을 샀다고 좋아할 게 아니라 어떻게든 학교가 문을 닫지 않게 사회적으로 버텼어야 했다. 초등학교가 없어진 곳에는 젊은 부부가 살 수가 없다. 저출생과 탈지방이 만나면서 초등학교부터 시작한 학교 붕괴가 이제 대학까지 올라왔다.
자본주의는 자본의 집중을 만드는 경향이 있지만 반드시 공간도 집중시키는 것은 아니다. ‘내부 식민지’는 공업화된 북부 이탈리아와 그렇지 않은 남부 이탈리아를 분석하면서 나온 개념이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이탈리아권의 남부 스위스는 지역간 분배 정책에서 핵심이다. 어떻게 공업지역의 소득을 농업지역으로 배분할 것인가, 그렇게 스위스 농업이 만들어졌다. 프랑스도 파리 중앙 권역의 비대화를 고민하기는 하지만 리옹 등 다른 지역이 우리처럼 완전히 붕괴할 정도로 문제가 생겨나지는 않았다. 오사카와 후쿠오카 혹은 후쿠시마 같은 권역들이 버티는 일본의 도쿄도 서울과 비할 정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정부의 지방 살리기’에 기꺼이 손을 들어주지 못하는 이유가, 나와 똑같은 얘기를 하고 나서는 결론이 ‘지방 공항’ 혹은 그와 같은 일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공항만 있으면 초등학교도 생겨날 것 같지만, 그럴 리가 만무하다. 설령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빨라야 10년이다. 그사이에 많은 지방 소도시는 이미 문을 닫았을 것이다.
농업보조금의 연장선에서 국토보조금에 관한 것을 생각해볼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해야 하는 국토를 보존하고 관리하는 일을 기꺼이 하는 사람들, 그런 명목의 보조금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에서도 농업에 생태보조금과 함께 국토보조금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공항 지을 돈, 도로 만들 돈, 이런 데에 중앙정부의 지원금을 더해 차라리 누군가 해야 할 국토의 보전과 정비 등의 일을 하는 거주민에게 직접 주는 건 어떨까 싶다. 농업부터 시작해서 지역 문화, 지역 서비스를 점차적으로 늘려나가다 보면 언젠가 기본 소득 메커니즘과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