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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편집장] 존재만으로 충분한
이주현 2022-11-04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도쿄국제영화제에 출장을 간 게 2018년. 영화제 행사장이 있는 롯폰기 힐스로 출퇴근하며 현지인들이 쉼없이 드나드는 번화가의 카페에서 이국의 공기를 마시며 일을 했던, 해외 출장자로서 누린 낭만을 아직 기억한다. 당시 배우 기획전의 주인공이었던 야쿠쇼 고지를 코앞에서 보고 설 던 일도, 외신 기자들과의 화합의 뒤풀이 자리도 생생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때 식당에서 옆자리에 앉은 프랑스 영화평론가와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포함해 한국영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이번주 <씨네21>에 장뤽 고다르의 <알파빌>에 관해 비평을 써준 평론가가 바로 그다. 생각해보면 영화로 연결된 희소한 확률의 재밌고 소중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올해 도쿄의 하늘길이 다시 자유롭게 열리면서 <씨네21>은 3년 만에 도쿄국제영화제에 취재를 가게 되었다. 김수영 기자의 취재기를 읽으니, 팬데믹의 끝에서 각국 영화인들의 교류가 다시 생기를 띠는 것 같아 반가웠다. 14년 만에 부활한 구로사와 아키라상의 공동 수상자인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구로사와 감독은 제3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방법을 알려줬다”라며 일본영화의 영향을 언급하거나 ‘차이밍량 감독 데뷔 30주년 특별전’으로 일본을 찾은 차이밍량 감독이 본인은 흥행 감독이 아니지만 “내 영화는 유통기한이 긴 것 같다”라며 좋은 영화의 긴 생명력을 얘기하는 모습이나 혹은 하마구치 류스케가 에드워드 양의 영화에 애정을 피력한 대담 자리가 눈앞에 훤히 그려지면서, 영화로 다시 연결된다는 게 이토록 즐겁고 아름다운 일이구나 새삼 느꼈다.

한편 이번주 <씨네21>에서 가장 자주 언급된 영화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일 텐데, 지난주 철학, 과학, 이민자 드라마로 영화를 요리조리 뜯어보았음에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언급하는 글들이 이번호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A24의 10년 역사를 정리하는 기획 기사에서는 당연하고, 이경희 작가의 ‘오늘은 SF’ 에세이에서도 송경원 기자의 크리틱과 이슬아 작가의 인터뷰에서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언급된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보러 갔다 ‘눈알 스티커’를 받아온 나는 ‘특전 수령 완료’ 도장까지 꾹 찍어준 매표소 직원의 성의를 생각해 미간 대신 핸드폰 뒷면에 제3의 눈을 하나 달았다. 초반에 펼쳐 보인 상상력의 스케일을 생각하면 사랑이(그것도 부모의 사랑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보수적인 결말이 급격히 영화에서 현실로 점프하게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쓰레기든 뭐든 난 너와 여기에 있고 싶어”라는 양자경의 대사는 한동안 마음에 오래 남았다. 여기 이렇게 존재한다는 것.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답이 될 때가 있다.

10월29일 이태원에서 비극적인 참사가 있었다. 그래서 더욱 저 대사가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는 듯하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에게도 깊은 위로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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