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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몸값' 장률, “효자, 지옥에 가다”
임수연 사진 최성열 2022-11-02

효도하려고 무법지대에 발을 들인 남자. <몸값>의 고극렬은 이 모순형용을 설득해야 하는 캐릭터다. 부자들이 신장이식 우선권을 독점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불법 장기매매 세계에 발을 들인 그를 비난할 수 있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돌연한 대지진으로 인신매매단의 주거지가 끔찍한 아포칼립스로 탈바꿈하면서 극렬은 선의와 광기, 폭력과 이타심이 공존하는 복잡다단한 동물성을 보여주는 캐릭터로 진화한다. 배우 장률이 지닌 특유의 애상적이면서 섬뜩한 기운은 의도적 비현실성을 갖고 노는 <몸값>을 납득 가능하도록 논리를 완성한다.

-전우성 감독이 연극 <마우스피스>를 관람한 이후 출연을 제안했다고 들었다.

=당시 <마우스피스> 재공연을 보러 왔었다는 이야기는 나중에 전해 들었다. 내게 작품을 제안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지만, <마우스피스>의 데클란과 <몸값>의 고극렬 사이에 맞닿아 있는 지점을 발견하셨던 게 아닐까 싶다. 데클란은 매우 폭력적인 가정에서 성장했다. 자신이 어떤 꿈을 갖고 있는지, 어떻게 감정을 표출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캐릭터다. 후반부로 가면 내재된 에너지를 쏟아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신들이 있는데 그 모습이 고극렬과 닮았다고 느끼신 것 같다.

-매 에피소드가 30분가량 지속되는 원컷으로 구성된 까다로운 시도를 했다. 작품 컨셉에 대한 설명을 듣고 대본을 읽었을 때 감상은.

=동명의 단편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장편화된 <몸값> 역시 원테이크 포맷을 유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흥미로운 동시에 부담이 됐다. 하지만 이 작품을 해냈을 때 연기적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 대지진 이후 흥정 전문가인 주영(전종서)과 형사인 형수(진선규), 극렬이 다시 만나는 방식이라든지 계속 다른 상황을 맞닥뜨리면서 그들의 관계가 변하는 모습이 무척 흥미롭게 다가왔다. 이들은 서로 다른 목적을 갖고 있지만 의지할 곳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동행한다. 서로를 믿기도 하고 배신하기도 하면서 알게 모르게 복합적인 감정이 쌓이는 과정이 관객이 봤을 때 재미있는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위독한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모든 사람이 고극렬처럼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신체를 담보로 걸 정도로 간절한, 극중 표현을 빌리자면 ‘효자’다.

=예전에 운동을 했던 인물이라는 설정에서부터 시작했다.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운동을 했던 순간도, 운동을 포기하며 부모와 현실을 탓했던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극렬의 원망은 죄책감으로 돌아온다. 한번도 메달을 따본 적이 없는 극렬에겐 신장을 구해 아버지를 살리는 것만이 아버지 목에 금메달을 걸어드리는 것과 같은 의미처럼 다가오지 않을까 상상했다. 극렬이 운동선수로서 갖고 있던 집요한 기질은 아버지의 신장을 구할 때 되살아난다. 특히 신장이식을 해줄 것이라 기대했던 형수에게 집착하게 된다. 극중 인물들이 극단적인 상황에 놓일 때 인간의 본성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데, 극렬의 경우 악에 받쳐 있더라도 순수하고 선한 면이 있다. 그런 모습이 관객에게 전달될 때 관객 또한 극렬을 응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형수에게 가하는 폭력이 마냥 폭력으로만 느껴지지 않게끔 선의와 절실함을 설득해내고 싶었다.

-매 에피소드가 원컷으로 혹은 원컷으로 찍은 것처럼 보이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전에 해왔던 연극 연기와 어떤 점이 닮았고 다르던가.

=원테이크라는 특성상 준비 과정은 비슷하다. 모두가 한 공간에서, 마치 연극처럼 등장과 퇴장을 공유하며 타이밍을 계산해서 움직인다. 사전 준비와 카메라 리허설을 오랜 시간 거친 후 ‘액션!’이라는 말이 떨어지는 순간부터 한편의 공연을 올리는 느낌으로 장면을 구현한다. 하지만 카메라와 함께 호흡한다는 점은 다르다. 매 순간 카메라가 어디를 비추는지, 배우가 어느 곳을 봐야 하는지, 시청자가 궁금해하는 곳이 어디인지 다양한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 관객의 눈에 전체가 들어오는 연극과 달리 <몸값>은 카메라에 맞춰 다른 연기를 해야 했기 때문에 공부가 많이 됐다. 실제 현장에서 발견되는 새로운 호흡과 에너지에 대해 아이디어를 나누고 이를 다음 테이크에 적용하기도 했다.

-롱테이크가 지속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나눠서 찍지 않았나.

=카메라 워킹과 배우들의 움직임을 사전에 공유하며 리허설을 했기 때문에 분명한 커팅 포인트가 있었다. 테이크당 10~15분 정도 촬영이 지속됐다. 등장인물이 많은 신일수록 엔지에 대한 불안감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실수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고 매 순간 집중했다. 모든 배우가 연기에 집중할 때 만들어지는 호흡 덕분에 나 역시 더 몰입할 수 있었다. 합이 정확히 맞아떨어질 때 짜릿한 성취감이 느껴진다. 매체 작업을 하면서 이런 느낌을 받는 순간이 또 있을까. 배우와 조명, 카메라가 서로 격려하고 집중력 있게 한마음 한뜻으로 호흡하며 한 시퀀스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굉장히 아름답게 다가왔다.

-매 순간 배우들이 에너지를 쏟고 있지만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자칫 극이 단조로워질 수 있다는 우려는 없었나. 한 테이크 안에서 다양한 호흡과 감정을 다채롭게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을 것 같다.

=<몸값>은 건물의 가장 낮은 곳에서 점점 위로 올라가며 진행된다. 새로운 공간을 만날 때마다 캐릭터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반응하고 적응해나간다. 가령 극렬은 돌 더미에 문이 막혀 있는 상황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극렬이라면 공사장에서 일해본 적이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돌을 어떻게 치울 것인가. 유도를 했던 극렬은 어떤 방식으로 위층까지 올라갈 것인가. 극렬이 그만의 방식으로 공간의 특성을 이용해 탈출하는 과정을 연기로 보여주면 설득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드라마 <마이 네임> 당시 6개월 동안 탄수화물을 끊고 10kg를 감량했다든지 액션스쿨에서 혹독한 훈련을 이겨냈다는 일화가 화제가 됐다. 운동선수 출신 고극렬을 연기하기 위해 비슷한 과정을 거쳤나.

=사실 고극렬은 운동을 그만둔 지 꽤 됐기 때문에 몸이 아주 좋은 상태는 아닐 거라고, 예전에 운동했던 흔적이 남아 있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마이 네임> 이후에도 계속 운동을 했기 때문에 실제 몸 상태가 고극렬의 상황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웃음) 액션스쿨에서는 서로 치고받는 동작뿐만 아니라 재난 상황에서 인물이 보여줄 수 있는 리얼한 움직임 자체에 대한 논의도 많이 했다. 무엇보다 진선규 선배님이 몸을 잘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보니 액션 합을 맞출 때는 그냥 선배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임했다. 부상의 두려움 없이 그저 선배님을 믿고 연습만 하면 됐던 상황이었다. 워낙 극한상황에 몰려 있고 운동성이 필요한 캐릭터다 보니 현장에서 밥을 많이 먹기가 힘들었다. 공교롭게도 실제 <몸값>에도 밥 먹는 신은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웃음) 덕분에 자연스럽게 살이 조금씩 빠졌다.

-<몸값>을 제작한 변승민 클라이맥스 스튜디오 대표에게 배우에 관한 코멘트를 요청했더니 “섬세하지만 폭발적인 에너지가 뛰어난 배우”라는 표현을 전해줬다.

=원래 걱정이 많은 성격이다. 그래서 캐릭터를 준비할 때 다각도로 고민하면서 근간에 있는 원형의 감정이 무엇인지 발견하려고 끝까지 파고든다. 하지만 혼자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공동 작업을 하는 동료들이 이 인물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듣고 힌트를 얻고 싶다. <몸값> 현장에선 진선규 선배님에게 계속 질문을 던졌는데, 그때마다 모든 가능성을 열고 전부 받아주셨다. 덕분에 몇 가지 에피소드도 생겼다. 한번은 “고극렬은 이때 코로 숨을 쉴까요, 입으로 숨을 쉴까요?”라고 물었더니 선배님이 크게 놀라며 “거기까지 내가 답하는 것은 힘들다”고 하더라. (웃음) 내가 가진 집요함이 배우에게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가끔 너무 괴로울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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