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의 2002년의 질문(1); 디지털
도그마의 시대? 물론 라스 폰 트리어와 그의 ‘디지털’ 친구들은 올해 칸를 찾지 않았다(토머스 빈터베르그의 신작이 다시 한번 크로와제트를 밟을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했지만 오지 않았다). 그 대신 경쟁부문에 네편의 디지털영화가 차례로 등장하였다. 마이클 윈터보텀의 과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 그리고 알렉산더 소쿠로프의 <러시아 방주>와 지아장커의 <알지 못했던 기쁨-(중국어제목)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이 떠돌며(任逍遙)>이다. 이 네편의 영화들은 네개의 서로 다른 주제와 네 가지 다른 스타일을 갖고 우리에게 네개의 새로운 영화를 보여주었다.
마이클 윈터보텀의 맨체스터 뉴웨이브록의 ‘디지털’ 연대기
섹스 피스톨 따위는 신경 쓰지마! 여기 조이 디비전이 있잖아, 라고 노래부르며 마이클 윈터보텀은 을 레이브 파티 열듯이 광란에 차서 펼친다(이 영화의 제목을 번역하려고 애쓰지 마실 것. 그룹 해피 먼데이의 노래 제목이다). 우선 마이클 윈터보텀의 영화이기 때문에 정리하고 넘어가자. 이 영화는 <쥬드>나 <사라예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오히려 그의 데뷔작인 <버터플라이 키스>와 (U2의 노래에서 가져온) <당신이 있거나, 아니면 없거나>의 사이 그 어딘가에 놓인다. 게다가 촬영이 (빔 벤더스의 오랜 동료인) 로비 뮐러이다!(어때, 갑자기 보고 싶지?)
영화의 주인공은 토니 윌슨. 케임브리지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다음 일찌감치 공부는 작파하고(!), 맨체스터의 그라나다 텔리비전방송사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이자(영국 펑크 인디 레이블로 그 유명한,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드럭’ 레이블쯤 되는) 드림팩토리 레코드사의 대표가 되었던 토니 윌슨의 20년간의 기록이다. 첫 장면. 마치 오래된 필름으로 보듯이 토니 윌슨은 행글라이더를 타고 날아오르려고 하지만 계속해서 처박힐 뿐이다. 그는 투덜대며 돌아간다. 마치 예고된 이카루스의 운명과도 같은 시작. 그러니까 시대적으로 이 영화는 그램록의 연대기였던 <벨벳 골드마인>의 속편이다! 1976년 7월4일 맨체스터에서 14명을 앞에 앉혀놓고 섹스 피스톨즈가 첫 공연을 한다(페이크 다큐멘터리 장면). 그리고 버즈 콕스의 공연이 펼쳐진다.
토니 윌슨은 중얼거린다. “이건 역사적이야!” 그 앞에 이안 커티스가 나타나고, 그는 조이 디비전을 만들어 펑크-뉴웨이브록의 새로운 장을 연다(참고로 나의 열광을 참아주실 것. 나는 조이 디비전의 열혈팬 중 한 사람이다. 룰라랄라 신나라!). 그러나 잘 알려진 것처럼 이안 커티스는 미국 공연을 앞두고 그만 자살한다(나는 영화가 여기서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시계를 보니 아직도 52분이 남았다). 토니 윌슨은 카메라를 보고 “이제 여기서 제 인생의 일부가 끝났죠”라고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준다. 그리고 조이 디비전 멤버들이 뉴오더를 결성하고 뉴웨이브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면서 달려간다. 마지막 장면은 1992년 하시엔다 클럽이 문을 닫으면서 이제 공연과 연주의 시대는 끝나고 레이브-테크노의 춤의 시대가 열렸음을 선언하면서 막을 내린다. 카메라는 다큐멘터리와 MTV와 인터뷰와 라이브와 (펠리니를 연상케 하는) 상징적인 엑스페리먼털 바로크 이미지 사이를 넘나들면서(으잉!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야? 하지만 일단 믿으시라. 보면 안다) 로비 뮐러의 카메라는 거의 신들린 것처럼 토니 윌슨의 기행을 쫓아가고, 실제 다큐멘터리와 영화장면을 디지털 촬영의 화질을 이용해서 절묘하게 서로 합성한다. 게다가 대사의 유머들은 거의 펑크 가사 수준이다. 심지어 나중에 등장인물들이 몰리고 시간은 부족하자 토니 윌슨은 카메라를 향해 한마디 한다. “이 사람들도 모두 찍어놓았으니, 그 부분은 DVD에서 보세요.”그러나 마이클 윈터보텀이 진짜 놓치지 않은 것은 토니 윌슨이 진심으로 펑크와 뉴웨이브의 지지자였으며, 그는 마음으로부터 자신이 조이 디비전을 통해서 마치 조지 마틴이 비틀스의 역사에서 했던 역할을 하고 싶어했다는 그 속마음을 찍으려고 달려든다. 그는 매우 무모하고 자기 생활이 무너진 채 섹스와 마약 속에서 살아갔지만, 그러나 그가 음악에 대해서 갖고 있는 사랑과 감식안은 거의 본능적이다. 그가 버즈 콕스의 음악을 듣고 오는 날 친구의 방에 걸려 있는 핑크 플로이드와 레드 제플린의 대형 브로마이드를 찢어버리라고 말하는 대목은 이상한 감동이 있다. 아직은 1976년의 일이다!
<트레인스포팅>보다 훨씬 유쾌하고, <벨벳 골드마인>보다 좀더 홍익대 앞 세대들을 흥분시킬 만한 ‘원샷’! 하지만 당신이 맨체스터 뉴웨이브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펫 숍 보이즈의 팬이거나 U2의 세대라면 피하실 것. 정중한 나의 충고이다. 그런데 참 나 영화평론가 맞아?
< 마이클 무어의 사우스 ‘화염병’ 파크 칸은 다큐멘터리에 대해서 항상 일정한 거리를 지켜왔다. 그래서 마이클 무어의 <컬럼바인을 위한 볼링>(Bowling for Columbine, 경쟁부문)이 경쟁에 온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모두들 의아하게 생각했다. 이건 46년 만의 일이기 때문이다(그런데 그해 56년에 이브 귀스토와 루이 말이 만든 다큐멘터리 <침묵의 세계>는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게다가 9월11일 ‘이후’ 세계화가 흉흉하게 진행되고 있는 지금 마이클 무어의 영화는 칸에 온 화염병이다. 부시는 국회에서 국방비를 올리며 승승장구하고 있고, 그 덕에 무기장사꾼들은 떼돈을 벌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이미 <로저와 나>에서 제너럴 모터스 회장과 한판 승부를 한 마이클 무어는 여기서 콜로라도주의 덴버에 있는 컬럼바인학교에서 벌어진 1999년 4월20일 총기난사사건을 찾아간다. 학교에 총기를 들고 와 무고한 12명의 친구들과 선생님을 그냥 재미로 쏴죽인 이 사건은 마이클 무어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고 고백한다. 마이클 무어의 질문은 항상 단순명쾌하다. 시작하자마자 미국의 단순-무식-과격한 폭력의 무감각함을 편집해서 보여준 도입부는 이번 칸에서 가장 웃긴 5분이다. “지금 지구상에서 모든 나라가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영화를 보고, 같은 텔레비전을 보는데 왜 미국에서만 이렇게 총기사건이 나는 것일까? 미국인들은 정말 총에 미친 인간들일까?”
마이클 무어의 화염병 혹은 <컬럼바인을 위한 볼링>
마이클 무어는 카메라를 들고 사람들을 찾아나선다. 그래서 우선 동네 학교부터 뒤진다. 학생들은 학교에 총기를 가방이나 셔츠에 넣고 등교하고, 자랑스럽게 보여준다. 등교할 때 정문에서 검색하지만, 학생들은 어떻게 옷을 입으면 무사통과하는지를 너무 잘 알고 있다. 한 귀엽게 생긴 고등학생은 옷에서 12정의 총기를 꺼내 보이며 자랑스럽게 웃는다. 그는 마지막에 거의 M60 수준의 무반동 총기까지 꺼내든다. 그래서 총기 가게에 가서 시치미 뚝 떼고 총기를 구입해보니 아무 문제도 없다. 미국인들은 이게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일년 동안 같은 영어를 쓰는 영국에서 68건, 캐나다에서 165건의 사건이 벌어진 동안 미국에서는 1만1127건의 총기사건이 벌어졌다.”
그래서 마이클 무어는 미국과 호수 하나만 넘으면 마주 보는 캐나다의 마을을 찾아간다. 또는 독일과 일본의 사례를 비교한다. 그는 닥치는 대로 찾아간다. 그리고 컬럼바인 총기사건 이후 텔레비전 앞에 나온 미국의 ‘꼴통’ 보수들의 인터뷰를 모아본다. 그들은 할리우드와 로큰롤, 그리고 인터넷이 문제라고 한탄한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인더스트리얼 록의 괴인 마릴린 맨슨을 지목하며, 오늘날 십대들이 이 모양이 된 게 저놈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래서 마이클 무어는 마릴린 맨슨을 찾아가 이게 다 당신 때문이라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마릴린 맨슨은 가죽바지에 머리를 쓸어올리며 한쪽 눈에 개눈을 한 그 눈동자를 깜빡거리며 점잖게(?) 한마디한다. “누군가 공격하기 쉬운 사람을 찾아야 했겠죠. 아니면 자기들이 그 이유의 대상이 될 테니 눈에 보이는 이유를 대야 한 거죠.”
그래서 마이클 무어는 전국라이플연맹(NRA)의 회장인 (영화배우) 찰턴 헤스턴을 찾아가기로 작정한다(나중에 인터뷰에 의하면 이런 ‘대단하신 분’이 설마 자기를 만나줄까, 하고 그냥 밑져야 본전으로 찾아갔다고 한다) 찰턴 헤스턴이 연맹에서 총기업자들과 보수 우익세력들을 앞에 놓고 미국의 정신은 자신을 지키고 가족을 지키는 라이플에서 온 것이라고 연설하는 동안 바깥에서 총기난동사건으로 죽은 아이들의 반대시위를 마이클 무어는 교차편집을 통해서 마치 권투선수의 펀치가 오가는 것처럼 보여준다. 그리고 마침내 찰턴 헤스턴을 만난다. 그는 자기의 주장을 끝까지 굽히지 않는다. 화가 난 마이클 무어는 컬럼바인에서 죽은 소녀의 사진을 꺼내들고 이 소녀의 얼굴을 마주보라고 외친다. 말을 더듬는 찰턴 헤스턴은 주춤 뒷걸음질치다가 결국에는 아무 말도 못하고 집안으로 슬그머니 추한 뒷모습을 보이면서 도망친다. 마이클 무어는 그걸 끝까지 지켜보다가 그의 집 앞에 소녀의 사진을 두고 나온다. 이 장면은 정말 가슴이 미어진다. 또는 내 비디오 라이브러리에 있는 <벤허>의 비디오를 집에 돌아가자마자 망치로 두들겨 부술 거라고 수십번을 맹세하게 만든다. 마이클 무어는 여전하고, 이 영화는 그의 진심이 담긴 영화이다.안 잊혀지는 시퀀스. 이 영화에서는 미국은 이렇게 살아온 나라입니다, 라는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과 함께 이민의 역사를 보여준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인디언들이 친절하게 손을 내밀자 백인들은 아이, 무서워(!)라고 외치며 일제히 총을 들고 나와 모조리 쏴죽이고, 일손이 부족하자 아프리카에 가서 흑인들을 총을 들고 무더기로 잡아오고, 그게 금지되자 두건 뒤집어쓰고 죽이고, 그저 비명을 지른 다음 바로 총을 든다. 이 역사를 마이클 무어는 <사우스파크> 팀에게 맡겼고, 그들은 10분 분량의 올해 가장 정치적인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정말 이건 무진장 웃기지만, 그러나 웃기에는 너무 잔인하다.
시사실의 풍경. 이 영화를 보면서 프랑스 기자들은 정말 마음놓고 웃는다. 그가 모아놓은 무서운 장면들 위에 마이클 무어의 보이스 오버는 배꼽을 잡게 만드는 유머를 줄창 섞어놓기 때문이다. 그건 독일의 유대인 학살과 일본의 난징 학살사건 기록필름에서조차 그러했다. 그러나 뒤이어 프랑스, 라는 자막과 함께 알제리에서의 학살이 보여지는 순간 시사실은 멈칫 했다. 나는 알제리 학살의 기록필름은 처음 보았는데 그건 마치 광주 같았다. 저 잔인한 학살의 역사.
사진설명
1. 상영관 중 하나인 아케이드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 위해 줄 선 사람들. 칸영화제 포스터와 개막작인 <할리우드 엔딩>의 포스터가 보인다.
2.
3. <알지 못했던 기쁨>
4. <컬럼바인을 위한 볼링>
5.
▶ 제55회 칸의 한국영화들, 열띤 취재공세
▶ 전세계 주요 언론들의 경쟁부문 상영작들에 대한 별점
▶ <죽어도 좋아> 리뷰 - 올리비에 세그레
▶ 영화평론가 정성일, 칸으로부터의 두번째 편지(1)
▶ 영화평론가 정성일, 칸으로부터의 두번째 편지(2)
▶ 영화평론가 정성일, 칸으로부터의 두번째 편지(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