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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수프와 이데올로기② 양영희 감독, 남편 아라이 가오루,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식탁에 수프를 올리셨는지”
조현나 사진 백종헌 정리 윤현영(자유기고가) 2022-10-20

과거 한 인터뷰에서 “<수프와 이데올로기>가 한국의 역사를 다룬 작품인 만큼 꼭 한국에서 개봉하고 싶다”고 말했다. 바라던 개봉을 앞둔 소감이 남다르겠다.

양영희 영화 초반에 어머니가 침대에 누워 4·3사건에 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걸 촬영한 게 근 11년이 다 돼간다. 10년 이상 걸린 작품이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는 생각에 기쁘다. 사실 우리 가족은 재일교포 중에서도 북한을 지지하고 또 가족의 상당수가 북한에서 생활하는, 정말 마이너리티 중의 마이너리티 중의 마이너리티이지 않나. 그럼에도 <수프와 이데올로기>를 보고 자기 일처럼 공감하는 일본 관객이 많았다. 가오루가 공감대를 형성하는 접점이 되어줬고, 영화를 보며 관객이 일본 역사와 4·3사건이 그리 무관하지 않음을 비로소 인지했던 것 같다. 개봉 이후 한국 관객의 감상도 궁금하다.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남편 아라이 가오루씨와 만난 뒤로 장편화의 가능성을 엿봤다고.

양영희 처음에는 증언의 의미로 어머니가 4·3사건에 관해 말씀하시는 영상을 찍었는데 장편으로 만들라고 하면 만들 수 있겠지만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웃음) 그래서 단편화를 고민하던 중에 가오루를 만났다. 사귄 지 얼마 안됐을 때 갑자기 그가 우리 엄마를 뵙고 싶다는 거다. 조총련 집안에 일본인 가족이 생긴다는 게 흥미로웠고 엄마의 반응도 궁금했다. 4·3사건을 경험한 엄마가 딸의 일본인 남자 친구를 만나는 스토리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는데 막상 두 사람이 만난 날의 풍경이 너무 좋더라. 어머니도 크게 환대해주시고 그날 남편이 가져온 미키마우스 티셔츠도 재밌었고. 그래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더 길게 담아보고 싶었다. 남편에게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한번 촬영 들어가면 특정 장면을 빼달라느니 하는 부탁은 못 들어주니까 잘 생각해서 답하라고. (웃음)

아라이씨는 어떤 이유로 감독의 어머니를 뵙고 싶었나.

아라이 가오루 만난 지 3개월이 됐을 때 프러포즈를 했고 5개월째에 어머님을 뵀다. 그때 어머님 연세가 85살 정도였는데 조금이라도 건강하실 때 빨리 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를 뵌 뒤 감독의 가족, 넓게는 한국과 한국의 역사까지 새롭게 알게 된 지점들이 있을 것 같다.

아라이 가오루 조총련계에서 활동하시는 어머님께 “딸과 결혼하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하면 나한테 소금이나 김치를 집어던지시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랬더니 양영희 감독이 내가 한국영화를 너무 많이 봤다더라. (웃음) 엄청 긴장하고 갔는데 다행히 따뜻하게 맞아주셨고 같이 수프를 먹자고 편하게 말씀해주셔서 금방 가족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말한 대로 제주도 4·3사건과 어머니가 오사카로 오신 후 일어난 전쟁 등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많았다. 마치 어머니의 지난 역사를 함께 여행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수프의 이데올로기>는 음식이 중요한 영화다. 각기 다른 길을 걸어온 세 사람이 함께 수프를 나눠 먹는 모습은 영화의 중심축과 다름없다. 특히 아라이씨는 수프 레시피를 배워 어머니께 대접하기도 했다.

아라이 가오루 세명의 아들이 전부 평양에 있기 때문에 그분들 대신 내가 요리를 해드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 뵀을 때도 네 번째 아들로 생각해달라고 했다. 일본의 많은 남자들이 할머니 혹은 엄마가 만들어준 된장국을 두고 ‘그리운 맛’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직접 만들진 않는다. 나는 그들도 직접 요리를 하고 가족과 나눠 먹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양영희 어머니만큼이나 가오루도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머니와 가오루가 마주 앉아 마늘을 까는 걸 보면서 진짜 좋은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이 장면이 이 영화의 힘이 되겠구나, 내가 이런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겠구나 하고 그때 감을 잡았다.

아라이 가오루 어머니가 국을 끓일 때 넘치지 말라고 냄비 뚜껑 사이에 나무젓가락을 끼워두셨는데, 나도 그걸 유심히 봐뒀다가 똑같이 끼우고 국을 끓인 적이 있다. 출연자로서 내가 가장 공들인 장면이라고 말하고 싶다. (웃음)

양영희 그전에 집에서 몇번 연습하고 갔는데 처음엔 그 맛이 아니었다. 몇 차례 연습하며 점점 발전했다. (웃음) 원래 며느리가 주로 시어머니의 요리법을 전수받지 않나. 우리집은 사위가 대신 이어받은 셈인데 엄마가 굉장히 좋아하셨다. 가오루는 그때 처음으로 수프를 먹은 것이지만 내겐 어릴 때부더 자주 먹은 익숙한 음식이었다. <가족의 나라>를 개봉했을 때 엄마가 “너의 각오를 잘 알겠고, 앞으로 너의 일에 대해 일체 말을 꺼내지 않을 테니 건강이나 잘 챙겨라”라면서 한달에 한번씩 수프를 택배로 보내주셨다. 그 안엔 멸치볶음 같은 반찬들도 함께 담겨 있었는데 그걸 먹을 때마다 정신적으로 회복되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엄마가 말씀해주셨는데 예전엔 사위 될 사람에게 딸을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씨암탉 요리를 내놓았다더라. 그래서 가오루가 방문했을 때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식탁에 수프를 올리셨는지 알 수 있었다. 식구(食口)라는 말도 있듯이, 함께 식사를 하며 점점 가족이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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