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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디셉션', 지적인 언어의 탐미가 두드러진다
김예솔비 2022-10-19

막이 열리듯 영화가 시작되면, 영국인 여자(레아 세두)의 모습이 나타난다. 이름을 숨긴 여자는 자신의 처참한 결혼생활과 미국인 소설가 필립(드니 포달리데스)과의 밀회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막상 둘의 밀회는 섹슈얼한 긴장감보다도 지적인 언어의 탐미가 두드러진다. 스스로를 ‘소리 애호가’라 칭하는 필립은 자신이 스쳤던 여러 여성과 대화를 나누며 작가로서의 생기를 얻는다. <디셉션>은 필립 로스가 1990년대에 발표한 동명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다.

필립과 여성들의 대화는 사랑과 간통을 비실비실한 웃음으로 가볍게 넘나들며 통상적인 멜로를 답습하지 않는다. 대화의 양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삶과 죽음, 사랑에 대한 신변잡기적인 대화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계 유대인으로서의 작가가 가진 정체성과 연관된 것이다. 영화는 연인의 뺨을 어루만지는 멜로와 유대인을 둘러싼 정치적 쟁점인 반유대주의와 동시대 망명자들에 대한 진술을 자신의 넋 안에 쥐고 흔드는 거친 풍자 사이를 왕복한다.

한 소설가의 정신을 유영하는 여정이라고 보면 쉽겠지만, 영화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특히 의문스러운 것은 영국인 여자의 정체다. 영화는 한 남성 소설가의 정신적 피조물로서 영국인 연인을 주시하다가도, 그가 쓴 소설의 너머에 그가 온전히 파악할 수 없는 그녀의 삶이 있음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한편 필립의 노트를 발견하고 외도를 의심하는 아내에게 필립은 소설 속 여자들은 자신이 스스로를 몰아세운 상상의 결과물이라고 말하며, 끝내 아내가 느끼는 치욕을 이해하지 못한다. 영화는 사랑의 기술과 소설 쓰기의 몸짓을 겹쳐놓는다. 허구, 혹은 정교하고 치명적인 기만이라는 형식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둘은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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