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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엄마되지 말자
2001-03-26

아줌마가 <어둠 속의 댄서>를 보고 심란해진 이유

<어둠 속의 댄서>를 두고 논란이 많은가보다. 호평하는 사람들은 “뛰어난 뮤지컬”이라는 점을 높이 사는 모양이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삼류

신파”라는 점을 꼬집는 것 같다.

나는 그런 귀신 나올 듯한 음악을 안 좋아하기 때문에 이 작품이 뮤지컬로서 뛰어난 점은 잘 모르겠고 삼류 신파라는 점엔 동의하지만 그게

굳이 영화 점수를 깎아먹는다고 보진 않는다. 인생이 어차피 삼류 신판데 뭐. 영화 속 신파랑 다른 게 있다면 신파와 신파 사이의 이음새마저

극적이진 않고 좀 늘어진다는 거 정도 아닌가. 사랑에 빠졌을 때나 아기를 낳았을 때 등 나름대로 감격해서 멘트할 일이 생겨 읊다보면 스스로

놀란다.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삼류 악극 대사 아냐…. 그런 걸 보면 신파야말로 인생의 핵심을 제대로 담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는 <어둠 속의 댄서>를 보고 좀 심란해졌다. 휴우. 저게 바로 동서를 막론하고 ‘어머니’가 아닌 모든 인간들이 ‘어머니’에 대해 믿고

기대하는 바구나. 아니, 심지어는 ‘어머니’인 인간들조차 자기 어머니에 대해서는 저렇게 믿겠지. 그리고 그 믿음은 그닥 배신당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대부분의 어머니란 족속들한테는, 그렇게 하는 쪽이 안 하는 쪽보다 훨씬 쉬우니까.

어떤 일이든, 같은 일이라도 그것을 잘하는 사람이 있고 못하는 사람이 있다. 아주 작은 예로 라면 끓이기만 봐도, 당장 라면집을 왜 안

내나 싶을 정도로 소질과 적성이 넘치는 사람도 있고 그저 자기가 끓여 자기가 먹기엔 무난할 정도로 하는 사람도 있고 절대 라면 근처엔 얼씬도

말아야 할 것 같은 사람도 있다. 부모되기도 마찬가지다. 소질이 많은 사람도 있고 노력하면 중간 정도는 할 수 있는 사람도 있고 절대 부모가

돼선 안 되는 그런 종류의 사람도 있는 것이다.

셀마의 경우는 부모가 될 자격이 충분하고도 넘치는 사람인 것 같다. 아들을 일관된 엄격함으로 훈육하고, 아이의 건강과 편안함을 최우선에

두고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자신의 크고작은 욕구를 참을 수 있으며, 무엇보다 그는 아이를 간절히 원했다. 그는 훌륭한 엄마였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내가 편하자고 아이에게 잼을 퍼먹이고 포크를 갖고 놀게 하는 이상한 엄마다. 나도 못먹겠는 괴이한 음식을 아이에게 먹이고

애가 깼는데도 귀찮아서 그냥 자는 척하는 자격없는 엄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셀마와 같은 상황에 만약 닥친다면 나같은 수준 이하의 엄마조차도

지극히 훌륭한 엄마인 셀마가 했던 것과 같은 선택을 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모성이 본능이기 때문이다. 내가 앤지 애가 난지 솔직히

분간이 안 되는 상태가 바로 모성이기 때문에, 아이를 위해 내 삶을 양보하는 것은 내 뇌를 살리기 위해 손가락 하나를 포기하는 것만큼이나

명료한 선택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부모자식 관계란 숭고하다기보다는 끔찍하고 무서운 것이라고 본다. 내 목숨이 다하고나서야 끝날 수 있는,

그래서 한번 시작이 됐다 하면 도저히 되돌이킬 수 없는 그런 관계 말이다. 모성이 위대하다고 부추기는 것은 그런 모성으로 인해 끊임없이

이익을 챙길 수 있는 이기적인 자식들의 몫이고, 엄마들의 입장에서 모성은 전교 1등만큼도 위대하지 않다. 그것은 노력과 정진의 결과가 아니라,

자기애 이상으로 자동적인 것이니까. 그런 뜻에서 모성은 가장 이타적인 행위 같지만 실은 가장 이기적인 행위인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모성이 커다란 힘을 가진 것이라고 해도, 셀마와 같은 엄마 얘기를 이렇게 슬프고 강력하게 만드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왜일까? 나는 <어둠 속의 댄서>를 보고 어째서 그리 심란해졌을까? 공감을 안 해서는 아니다. 막판으로 갈수록 마구 울었다. 그러나 그건

후련한 울음, 이른바 ‘카타르시스’는 아니었다. 부모자식관계라는 그 관계가 너무 무섭고 슬퍼서 울었달까. 그런 이야기를 보란 듯이 화려하게

해대는 라스 폰 트리에가 나는 영 별로다. <브레이킹 더 웨이브>에서 세상에서 가장 천치 같은 여주인공을 만들어놓고 마구 추앙할 때부터

알아봤지만.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엄마가 되기 전엔 다 천차만별의 보통 ‘자식’들이었다. 그런데, 소질이고 적성이고 성격이고를 다 뛰어넘어, 모든 인간들이

‘엄마되기’ 앞에서는 다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획일화된다. 모든 인간을 다 똑같은 모습으로 만들어버리는, 군대보다 강력하고 제도교육보다 끔찍한

이 관문. 지금까지의 삶과 꿈은 다 무(無)로 돌려버리고 모두를 엄청난 힘으로 평준화시켜버리는 이 관문, ‘엄마되기’.

결론을 내자. 세상의 모든 자식들은 자기 어머니가 목숨 내놓고 무리한 일에 뛰어들지 않게끔 자중자애하고, 어찌됐든 아이를 이미 둔 사람들은

다른 것도 아닌 ‘생명’에 관한 일이니 최선을 다해 소중히 키워내고, 아직 아이가 없는 이들은 내가 정말 이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진입할

각오가 돼 있는지 숙고해본 다음에 아이를 갖도록 하자. 숙고해봐야 별수없는 일이긴 하지만.

오은하/ 대중문화평론가 oheunha@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