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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 <바이올린/비올라 소나타 전집>
2002-05-30

고전음악의 성(性)해방

브람스 <바이올린/비올라 소나타 전집>(SKCD-L-0243~4 바이올린/비올라:닐스-에릭 스파르프 피아노:엘리자베스 베스텐홀츠)

영국 음악은 ‘평정’을, 이탈리아 음악은 ‘일상’을 지향한다. 음악문화 전반이 그렇다. 프랑스 음악은 아름다움을 그리고 독일 음악은 순수를 지향한다.

평정과 일상을 지향하는 것은 다소 과하더라도 과하지 않다. 음악은 ‘평정’, 그리고 일상과 상호 심화-확대 관계에 있다.

하지만 ‘순수’와 ‘아름다움’은 다르다. 음악이 순수=아름다움 그 자체인 까닭이다. 순수가 순수를 지향한다… 순수의 순수, 예술의 예술, 아름다움의 아름다움, 이런 단어들이 함축 혹은 응축하는 어떤 ‘절대성’은 자칫, 파시즘을 낳는다.

프랑스 문화의 ‘예술성’이 극우파를 온존시키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최근 프랑스 대선과 맞물린 ‘극우파 충격’을 보며 잠시 고개를 든 적이 있지만, 그건 아니다. 프랑스 문화는 ‘예술적’이라기보다는 ‘예술의 예술’이 인위-작위성을 발하는 면이 있으므로 문제다. ‘통일’독일은, 어떤가? 구동독의 음악은 교향곡에 행진곡 박자를 넣는 촌스러움 곁에 실내악이 정말 ‘순수의 순수’였다. 그 순수는, 놀랍게도, 스탈린주의와 파시즘이 겹치는 접점이고 참혹한 비명의 동전 양면이었다. 독일 음악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말로 ‘3B’가 있다. 바흐-베토벤-브람스, 이 세명(만)이 진정 위대한 작곡가며 진정 독일적인 작곡가라는, 일종의 구호다. 그 ‘순수의 순수’ 지향은 정말 거대해서 다른 나라 연주자들이 3B의, 특히 내밀한 영혼의 실내악이나 종교음악을 제대로 소화하는 데 모종의 ‘세불리’를 처음부터 느끼는 풍토가 생긴 지 이미 한 세기가 넘었다고 해야 할 정도다. 히틀러와 독일 음악이 강성하던 시절에는 자국의 민족음악으로 물러나거나 어설피 흉내를 내다가 미련하게 ‘정치적’ 파시스트가 되거나 둘 중 하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3B를 좋아하지만 독일 연주자들의 ‘3B 근성’은 혐오하는 편이다.

하지만 달리 마땅한 것도 없고…. 그러던 중 위 음반을 듣고 나는 커다란 기쁨을 맛보았다.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처음부터, 아름다움의 개념 자체를 능가하듯 감동적인 나신을 드러낸다. 연주자는 덴마크와 스웨덴 출신. 성해방? 최소한 ‘3B’ 고전음악의 성해방이라고 할 만은 하겠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얘기는 아니고. 김정환/ 시인·소설가 maydapoe@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