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란 적이 있을까?
지난 세월을 추억하는 유튜브 클립에서 한 선수의 응원가를 들었다. “가~가~가~가~ 가~르시아”로 시작하는 연호는 빨라지는 박수와 함께 지축을 흔들었다. 10년도 전, 롯데 자이언츠에서 인상적인 플레이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카림 가르시아 선수는 헨델의 <메시아> 멜로디에 그의 이름을 넣은 응원가가 트레이드마크였다. 이역만리 낯선 곳에 덩그러니 놓인 이방인은, 어쩌면 두려움의 감정을 애써 억누르며 불안한 기대로 이 땅을 밟았을지 모른다. 적응을 위한 힘든 시간을 보내고 마침내 자신의 이름으로 경기장을 가득 채우는 응원가가 만들어졌을 때 느낀 전율은 익숙한 곳에서의 환대보다 몇배나 컸을 것이다. 이후 한화 이글스로 팀을 이적했을 때 그 응원가를 써도 좋은지 롯데 관계자에게 물어보았다는 후일담을 통해 그의 감동을 어림짐작할 수 있다.
모두가 꿈꾸는 축구의 종주국에서 자랑스러운 손흥민 선수는 지금도 역사를 새로이 만들어가고 있다. 그가 활약을 펼칠 때마다 경기장에 울려퍼지는 “Nice one Sonny”로 시작하는 노래는 70년대 그 팀의 전설적인 선수인 시릴 놀스의 응원가를 이어받은 것이다. 새로운 영웅에 맞춰 이 노래를 제창하는 것으로 팬들은 그가 진정한 팀의 당당한 일원임을 환영한다.
온 나라가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 신발을 벗고 물속에 들어가 신중한 스윙을 하던 앳된 얼굴의 선수가 기억난다. 연습으로 까맣게 타버린 다리와 상대적으로 하얀 발의 대조에서 그가 관중도 없는 필드에서 보낸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다가왔다. 숨죽인 관중은 그의 자신 있는 플레이에서 그의 노력을 읽었고, 멋진 성취보다 이름 모를 루키의 고독한 축적의 시간에 환호하고 열광했다.
북쪽 바다를 호령하던 거친 사람들의 드라마 <바이킹스>의 주인공들은 낯선 이를 만나면 본인과 부모의 이름으로부터 용맹함의 증거를 묻는다. 입신양명과 명진사해의 고사에서 보듯 이름을 떨치고자 하는 욕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의 본성과 같음을 알 수 있다. 누군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존재는 더욱 커지고, 불러주는 사람이 많아지며, 보다 큰 의미로 다가온다. 그 후엔 나의 존재가 사라져도 다음 세대에 나의 이름을 남기고자 한다. 압도적인 전력의 차이를 알고 있음에도 적을 향해 용감하게 달려드는 이들의 비장한 출정은, 예외 없이 생존의 확률보다 후대에 칭송될 자신들의 명예를 힘차게 외치는 것으로 시작한다.
자신을 버리고 전체를 위하는 희생은 깊은 감동으로 나를 감싸고, 숭고한 뜻을 기리는 영웅에 대한 존경과 응원은 벅차게 다가온다. 나보다 ‘확장된 나’인 ‘같은 무리’를 위해 나를 버릴 수 있기에, 현명한 학자는 우리 종이 <이기적 유전자>를 가졌다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우리 종에게 서로를 독려하는 응원은 또 하나의 본능과 같을 것이기에, 오늘도 우리는 서로를 응원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