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백인들은 나쁜 놈들이라고 생각해왔다. 마이클 무어의 <멍청한 백인들>을 보기 훨씬 전의 일이다. 십자군전쟁으로 이슬람문명을 파괴한 것도 백인이고, 남북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을 학살한 것도 백인이고,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도, 지구의 생존을 위협하는 핵무기와 환경오염을 유발한 것도 모두 백인들의 짓이다. 그렇게 생각해왔다. 혹시 그런 선입관 때문에, <멍청한 백인들>이 더 재미있었는지도 모른다.
올해 칸영화제 경쟁에도 오른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는, 신랄하게 ‘백인’을 욕한다. 세계를 망치고 있는 미국과, 미국을 쥐고 흔드는 백인들을 씹어댄다. 미국의 제도적 부조리와 정경유착, 여성과 흑인에 대한 차별 등 미국사회의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짚어간다. 목소리만 높이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인 통계와 자료를 치밀하게 제시한다. 의회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의석은 13%이고, 상위 500개 회사 중 496개는 남성이 경영한다. 연평균 흑인 수입은 백인 평균보다 61%나 낮다. 1979년부터 1% 최상류층의 급료가 157% 오른 것에 비해, 하위 20%는 오히려 100달러 정도 감소했다. 마이클 무어는 미국을 지배하는 소수의 백인 부유층만을 위한 정책으로 미국이 몰락하고 있으며 세계의 골칫덩이, 깡패가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마이클 무어는 요즘의 애국주의에 동참할 생각도 없다. 이 책은 원래 9월10일에 인쇄하여 10월2일에 배본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9·11 테러가 발생하자 출판사는 부시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을 좀 낮춰달라고 요구했다. 대신 파격적인 인세와 재출판 비용을 전액 출판사가 부담하겠다고 제안했으나 마이클 무어는 거절했다.
마이클 무어가 <멍청한 백인들>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부시가 대통령직을 훔쳐갔기 때문이다. 동생인 젭 부시가 주지사로 있는 플로리다의 표를 도둑질하여, 이른바 후진국에서나 일어날 법한 선거부정으로 ‘쿠데타’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웃기는 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멍청한 백인들>을 보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윤리적이지도 않고, 섬세한 지적인 논리성도 없으며, 미사여구도 보이지 않지만, 그러나 거대하고 원초적인 힘이 느껴진다”는 의 평은 적확하다. 독설과 풍자를 섞어가며 갈겨대는 <멍청한 백인들>의 근저에는 진실과 믿음이 담겨 있다. 그것이 아마존과 <뉴욕타임스> 등에서 8주간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힘이다. 아마존에 오른 무수한 독자서평들도 ‘대통령의 절대권력에 맞서 싸우는 무어의 용기에 갈채를 보내며, 그와 같은 순교자들이 더 나와 길을 잃은 채 무지하고 멍청한 상태에서 만족하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경종을 울려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고보니, 올해 우리도 선거를 해야 한다. <멍청한 백인들>을 보니, 미국의 경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나무와 숲 펴냄)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