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난 나’라고 말하던 세대는 구리다. 지금 세대는 ‘넌 누구?’라고 물어본다. 아바타, 닉네임, 버추얼 아이덴티티. 이 세대의 연애 스토리는 ‘넌 누구?’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는 내러티브로 짜여진다. 너는 실제 너와 버추얼한 너로 나뉜다. 버추얼한 너를 사랑하게 되었다. 모든 버추얼한 존재는 ‘오프라인’, 즉 ‘실제 너’를 지닌다. 실제 너를 만나고 싶다. 그러나 실제 ‘너’를 만나는 일은 배반의 행위이다. 그것은 버추얼한 너와 일정한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구조가 새로운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이미 모든 ‘가면 놀이’가 이런 구조를 지닌다. 그렇다면 <후아유>의 해결방식은? 순하디 순하다. 버추얼한 너와 실제 너를 하나의 ‘너’로 정리하면서 끝난다. 그렇게 쉽게?
방준석과 서준호가 음악을 맡았다. 방준석은 예전에 ‘유엔미 블루’라는 밴드를 했다. 그리고 어어부프로젝트를 위시한 각종 인디프로젝트에서 기타리스트로 세션을 한 바 있다. 그는 <공동경비구역 JSA> <텔미썸딩> 같은 영화에서 영화음악 실력을 보여주기도 했었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오랜만에 기타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사이버 공간’의 현실태는 별게 아니라 ‘자기 방’이다. 다들 자기 방 속에 처박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림이 좀 심심할 수도 있는데, 장점을 살리자면 그 공간은 ‘내성적’인 공간이 된다. 방준석은 주로 ‘슬로 코어’라 부를 수 있음직한, 몽환적이고 미니멀한 기타 프레이징을 앞세운 심플한 연주들로 그 내성적인 공간의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다. 메인 테마는 약간 그 계통의 사운드에서 벗어나 있는데, 조금 평범하고 발랄하게 하라는 제작진의 주문이 있었던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방준석과 함께 음악을 맡은 서준호는 우리가 ‘볼빨간’이라고 알고 있는 바로 그 사람. 그는 주로 선곡쪽을 담당했을 것이다. 크라잉 너트, 델리 스파이스, 롤러코스터 등을 위시하여 다양한 가요들을 골라놓고 있다. 방준석의 슬로 코어적 사운드에 어울리는, 어딘지 인디레이블 ‘캬바레’의 분위기가 연상되는 드림팝 성향의 곡들도 꽤 고르고 있다.
그렇다 해도 델리 스파이스의 노래는 사이버 세계의 사랑에 아주 잘 어울린다. 아무리 애를 쓰고 지우려 해도 (얼굴도 모르지만) 너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이 노래는, 끝부분에서 지나치게 많이 반복되긴 하지만, 버추얼한 ‘너’에 목숨 거는 새 세대의 주제가 비슷하게 쓰이고 있다. 적절한 선곡이다 싶다.
그런데 선곡이건 오리지널 스코어건, 제작진이 혹시 ‘조금 쉽고 잘 알려진 분위기나 노래들로 가자’고 주문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꼭 영화의 결론처럼, 조금 싱겁게 되고 만 대목이 없잖아 있다. 상업주의가 하는 고민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혹시 더 막 나가면 관객이 외면하지 않을까, 하는 것. 다른 하나는, 혹시 더 막 못 나가면 관객이 심심해하지 않을까, 하는 것. 그런데 둘 다 엑스표다. 하나는 너무 막 나가서 포르노가 되고, 다른 하나는 균형을 잡으려다가 건전가요가 된다. 성기완/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