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영화읽기 > 영화읽기
반미,반자본 팸플릿 아냐?
2001-03-26

지나치게 작위적이나 서툰 영화 <어둠 속의 댄서>

<어둠 속의 댄서>라는 제목은 관객으로 하여금 묘기에 가까운 활약을 기대하게 한다. 그리고 영화는 그 기대를 전혀 저버리지 않는다. 라스

폰 트리에의 최신 호기심은 그저 어리석은 짓으로 봐 넘기기에는 지나치게 계산적이고 작위적이며, 그렇다고 마음을 많이 움직이기에는 너무나도

서툴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최소한 한 가지는 해냈다. 이 덴마크 도그마티스트는 물불 안 가리고 덤빈 끝에 그가 바란 대로 논란을 만들어내는

데는 성공한 것이다. 포스트 펑크 디바 비욕을 위한, 이 미친 듯이 비관적인 영화를 통해 말이다.

질문을 한번 던져보자. <어둠 속의 댄서>는 할리우드 뮤지컬에 대한 불쾌하고 반미적인 패러디인가? 아니면 쉽게 찾아보기 힘든 여자주인공

배우를 꼬드겨 반다큐멘터리 스타일로 이용해먹은 만행인가? 답은 물론 둘 다다. 영화는 3분짜리 오프닝으로 자신의 허식을 일단 드러내고는,

곧장 산만한 <사운드 오브 뮤직> 리허설로 향한다. 두꺼운 뿔테안경을 낀 추레한 외모에 어린애 같은 비욕은 마리아 역할을 맡아, 이것저것

다 알고 지도해주는 친구 캐서린 드뇌브와 함께 연습을 한다. 이 장면은 황홀할 뿐 아니라 아주 교묘하게 유머러스하다. 배우로서의 비욕은

그저 하란 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고, 캐서린 드뇌브- 너무나 그녀답지 않은 역할을 맡았다- 는 가끔씩 ‘벙쪄’ 보이는데, 그건 아마도

감독이 대체 얼마나 더 이 짓을 할 건가를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대부분의 장면에서 <어둠 속의 댄서>는 베리테 스타일로 촬영됐다. 비디오테이프에, 점프 컷에, 잘리는 패닝에, 즉석에서 만들어졌을지도 모르는

영어 대사들에. 비욕이 맡은 역할은 빈사상태의 성마른 부랑아다. 그녀의 상상은 옛 뮤지컬영화들로 풍요로워지지만 이 불쌍한 공산권 출신 이민자는

시력을 잃고 있다. 영화의 황당하고 눈물 쥐어짜내는 플롯과 마찬가지로, 그녀가 상상하는 노래들의 콘텍스트는, 말도 못하게 쓰레기 같다.

게다가 썰렁하게 이 등장인물들은 뮤지컬과 인생의 관계를 즐겨 논의한다. 그 와중에 비욕- 모든 장면에 다 나올 뿐 아니라 모든 뮤지컬 솔로를

죄다 부르는- 은 자동적인 소외상태에 처해 있다. 언제나 아주 교과서 같은 영어발음을 구사하며, 혼자 춤추며.

<어둠 속의 댄서>가 멜로드라마틱하다고 말하는 것은 전체를 다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이 영화의 플롯은 그리피스마저 수치스럽게 했을 것이다.

혼자서 아들을 키우는 비욕이 2교대 근무를 연달아 하면서 공장에서 번 동전 하나까지도 아들마저 눈이 멀기 전에 수술을 시켜주려고 모은다.

기계를 고장냈다고 쫓겨난 바로 그날, 친절해 보이던 이웃이 그녀 돈을 훔친다. 비욕을 살인으로 몰고 가는 이 상황은 이 영화를 그저 구제불능인

영화에서 정말 적극적으로 불쾌하기 이를 데 없는 영화로 변모시킨다. 그녀가 무너지자 <어둠 속의 댄서>는 곧장 잔 다르크 분위기로 가버린다.

이것은 죽기 직전 비욕이 꽥꽥대며 부르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들>로 완성된다.

트리에가 기자회견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그의 “공산주의자” 부모는 할리우드 뮤지컬을 싫어하고 인정하지 않았다한다. <어둠 속의 댄서>의

뻔뻔스러울 정도로 노골적인 냉전 강조 이정표들로 유추해보건대, 그들은 어린 트리에를 소비에트식 키치속에서 기른 것이 틀림없다. 옛 공산주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건너온 땅꼬마 이민자 셀마가 사는 미국은 상상속의 미국이다. 이 미국은 <실버 더스트> 등의 소비에트 프로파간다 영화에

나오는 억지로 꾸며낸 미국과 너무나 닮아 있다. 그녀가 산업생산현장에서 기계 소리에 맞물린 음악에 맞춰 추는 춤은 스탈린식의 신데렐라 이야기인

를 보는 듯하다. 또 그녀가 나중에 겪게 되는 곤경은 어딘지 에설 로젠버그(1951년 남편 줄리어스와 함께

미국 민간인으로는 최초로 간첩죄로 사형을 선고받은 인물. 2년 뒤 형이 집행됐다)의 모습조차 내비친다.

이 냉소적인 영화는 결과적으로 반자본 응징물이 되어버렸다. 형식에 집착하다가 느닷없는 기습은 하지도 못한 채 우아한 서곡으로 끝나고 만

영화가 거둔 성공치고는 희생만 컸을 뿐 실속은 없었다는 얘기.(200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