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자신이 졸업한 학교를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 현재 재학생 수를 보면 저출생, 고령화 추세를 실감할 수 있다는 글이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되었다. 나도 내가 졸업한 중학교를 검색해보았다. 나의 모교는 경상남도 소도시 외곽에 있던 여자중학교로, 90년대 후반 당시 한반에 50여명을 꽉 채워 학년당 13학급이었다. 어림잡아 역산해보면 당시 전교생이 2천명 정도였다. 검색 결과 나오는 지금 전교생은 110명이었다. 학년당 2학급, 30명 내외. 2학년은 30명도 되지 않았다. 2천명이 110명이 되다니! 정말, 인구 감소를 실감하게 하는 숫자였다.
지난해 한국의 전체 합계출생률은 0.81, 서울 지역 출생률은 0.64였다. 저출생, 고령화와 그에 따른 사회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 정책이 시도된 지 수십년이 지났지만 출생률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2020년부터는 평균수명 연장에 따른 사망률 감소 효과보다 출생률 저하의 효과가 더 커서, 처음으로 인구의 자연감소 현상도 발생했다. 2016년 통계청은 2032년부터 인구 자연감소가 시작되리라고 예측했고, 2018년에는 이 예측 시기를 2028년으로 앞당겼다. 그러나 실제로 인구 감소는 2020년부터 시작됐다.
아이를 낳지 않은 이유는 많고도 많다. 저출생의 원인으로 집값 상승부터 불안정 노동까지 사회적 문제가 두루 제시되었고, 실제로 다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출생, 고령화가 사회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부터 정책의 직접 대상인 가임기 기혼여성의 입장에서 볼 때 아이를 낳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단연 ‘차별과 배제’다. 아이를 낳으면 누가 키울까? 국가나 사회가 아이를 온전히 키워주지 않는다. 애당초 보육의 특성상 사회가 더 부담할 수 없는 것인지, 가능하지만 ‘효율성’ 문제로 하지 않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부모 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육아의 절대적인 부담을 호소하고, 많은 경우 직장을 그만두거나 이직을 한다. 아이를 낳으면 일단 출산 여성인 내가 노동시장에서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될 가능성은 너무나 높다.
모성에 대한 배려가 보이지도 않는다. 맘충이니 애새끼니 하는 혐오 표현이 ‘클린봇’ 필터도 적용되지 않을 만큼 널리 쓰인다. 임신과 출산을 이유로 승진이나 인사이동에서 후순위로 밀리거나 간접적으로 사직 압박을 받는 상담 사례는 드물지 않다. 직접 차별은 위법하니, ‘임신으로 피해를 입는’ 다른 직원들이 공동으로 임산부 배제 의견을 내는 방식으로 차별하기도 한다. 그렇게 태어난 사회적 약자인 어린이에게 상냥한 사회도 아니다.
저출산, 고령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견고한 차별과 배제의 벽을 쳐다보면, 개인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그저 저 밖으로 밀려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버리고 만다. 아이를 갖고 싶은지의 문제가 아니라,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되는 삶에 감히 몸을 던지고 싶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