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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편집장] 인간답게, 동물답게 살 권리
이주현 2022-08-12

8월8일과 9일, 서울과 경기 지역 일대에 80년 만의 기록적 폭우가 쏟아졌다. 그야말로 생전 처음 겪어본 공포스러운 폭우였다. 출근 시간이 평소 대비 2~3배 늘어난 것 말고는 침수나 붕괴로 인한 직접적 피해가 없었으니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자주 가던 하천의 나무들이 어깨까지 물에 잠긴 것을 보니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날씨의 아이>가 생각나기도 했다. 이상기후로 비가 멈추지 않아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긴 근미래의 도쿄를 배경으로 한 <날씨의 아이>는 분명 감독이 상상의 나래를 펼쳐 만든 작품이지만, 지금과 같은 재난이 반복된다면 상상의 디스토피아가 현실이 되는 것도 시간문제겠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서울 관악구 반지하 주택 일가족 참사 사건을 보면서는 <기생충>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외신에서도 <기생충>을 예로 들어 한국의 집중호우를 보도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기생충>이 어쩌다 현실을 반영한 다큐멘터리가 되는 순간이었다. 봉준호 감독은 집중호우 뉴스의 자료 화면으로 자신의 영화가 소환될 줄 짐작이나 했을까. 어쨌든 <기생충>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재난은 공평하지 않다. 폭우가 쏟아지자 박 사장(이선균)네 가족은 캠핑이 취소된 것을 아쉬워하지만 똑같은 폭우 앞에서 기택(송강호)의 가족은 가슴께까지 물이 찬 반지하 집에서 필수품만 겨우 챙겨 대피한다. 안타깝게도 어떤 현실은 영화보다 가혹해서, 제때 재난을 피할 수조차 없었던 사람들의 소식을 아프게 전해준다.

기록적 폭우와 폭염은 기후변화의 징후이며, 기후위기는 두말할 것 없이 인간의 과욕이 낳은 결과다. 최근 국내에 개봉한 두편의 다큐멘터리 <군다>와 <카우>는 포식자 인간의 오만함을 동물-가축의 일상을 클로즈업함으로써 되비춘다. <군다>는 어미 돼지 군다와 새끼 돼지들 그리고 닭과 소가 주인공이고, <카우>는 제목 그대로 젖소가 주인공이다. 빅토르 코사코프스키 감독의 <군다>에는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내디딜 때 같은 긴장감으로 도약하는 외발의 닭이 나온다. 그리고 어미 돼지 군다와 엄마의 젖을 맹렬히 탐하는 새끼 돼지들이 기운차게 화면을 장악한다. <군다>에 등장하는 동물들의 야성적 생명력은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원천이지만 반대로 안드리아 아놀드 감독의 <카우>에는 빛나는 생명력을 잃고 낙농장에서 살아가는 젖소 루마가 인간의 비인간성을 고발하는 주체로 등장한다. 폭우로 뒤숭숭한 시기, 착취가 아닌 공존을 고민하며 동물들에 눈을 맞춘 영화 <군다>와 <카우>를 보며 이 지구에서 마땅한 권리를 누리며 ‘고유한 존재’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도 특별한 투쟁인지 새삼 돌아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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