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한 글로벌 기업의 사옥에 강연차 다녀왔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디지털화, 자동화, 원격화 등의 기술은 전세계인의 지지를 받으며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인간을 배제할 수 있는 기술 진보를 온 인류가 지지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 난리통에 살아남은 조직들간에는 더욱 치열한 경쟁 구도가 펼쳐졌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이 살아남을 방법은 빠른 학습 능력과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소통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조직은 이를 위해 끊임없이 의식과도 같은 모임을 만들어 구성원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단련시키려 애쓴다. 나의 강연도 바로 그런 ‘리추얼’의 일환이었다.
그간 리추얼은 대부분 구성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특정한 메시지를 다 함께 경청하고 속내를 털어놓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번 강연에서 나를 기다린 것은 대형 강의실을 가득 메운 직원들이 아닌, 사방이 막힌 사내 스튜디오와 표정 식별이 불가능한 2천명이 모인 채팅 창이었다. 이제는 감염의 우려 때문만이 아니라 편리함 때문에라도 온라인 소통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듣는 이들의 표정 하나하나를 읽을 순 없어도 청자들의 손놀림이 실시간으로 쏟아내는 말들로 그들의 감정 변화와 관심사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었다. 나의 한마디 한마디에 호응하고 감탄하며 공감과 의견을 덧붙이는 말들이 롤러코스터처럼 역동적으로 굽이쳤다. 나 또한 쏟아지는 질문에 실시간으로 답하며 빠른 속도로 말들을 쏟아냈다.
행사가 끝나고 주최측 담당자에게 강연 중 올라온 댓글의 공유를 부탁드렸다. 오랜 시간 현장에서 수백, 수천명의 사람들과 소통한 시간들 하나하나가 너무나 소중하고 감동적이었지만 이번처럼 세밀하고 사적인 경험은 처음이었다. 댓글 속에 묻어난 각자의 소중한 인생을 보았고, 무리 중 한 사람이 아니라 친밀하고 다정한 ‘우리’가 되는 시간이었다. 온라인의 댓글을 통한 상호작용은 화자는 말하고 청자는 수용하는 일방적인 전달 방식을 넘어선다. 지금도 ‘1과 N’ 형태는 동일하지만 온라인에서의 소통은 1과 N들간의 ‘사적인 관계’로 발전한다. 더 나아가 각각의 댓글에 공감하고 호응하여, 화자와 청자는 1↔ N ↔ M의 관계로 확장된다.
만화책 속 등장인물의 생각은 말풍선 속에 활자로 담겨 출력된다. 지금껏 청자들은 자신의 말풍선의 안을 채울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제 저마다 다른 곳에서 자판을 두들기며 자신의 말풍선을 채우는 중이다. 보내진 신호는 다시 거미줄처럼 연결되고 마음들을 엮어낸다. 조직의 의지와 강제가 아닌, 자발적인 참여로 새로운 리추얼이 탄생한 것이다.
우리 중 누군가 쓰러져야 끝났던 애국조회의 훈화에서 모두가 호응하고 환호하는 축제로 변화시켜준 기술의 선물에 감사한다. 말풍선들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대화’로 진보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