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이 계속되고 있다. 베란다에 새들이 마실 물통이라도 걸어놓아야 하나 고민한다. 인터넷 마트에서 배송 신청을 하려다가 장바구니를 든다. 고체치약을 씹는다. 기온이 높아져 펭귄들이 아사했다는 소식을 본다. 사진이 보일까 무서워 눈으로만 기사를 훑는다. 과일을 사며 20년 후에도 이 과일을 먹을 수 있을지 진심으로 걱정한다. 한편으로는 여전히 연비 나쁜 자가용을 날마다 몰고 다닌다. 사람 두명과 고양이 세 마리가 사는 집에서 에어컨을 방마다 켠다. 많은 서류를 인쇄한다. 세탁기와 건조기와 의류관리기를 쓴다. 택배로 물건을 산다. 물을 틀어놓고 세수하는 습관을 아직도 완전히 고치지 못했다. 사놓고 안 먹은 음식이 냉동실에 가득하다. 가뭄과 기온 변화로 멸종 위기에 놓인 동물이나 생존을 위협받는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에 울되, 그 이야기를 와이파이가 연결된 커다란 텔레비전으로 본다. 기후 위기 대응에 가장 효과적인 일은 아이를 덜 낳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 한명이 연간 배출하는 탄소배출량이 약 58t인데, 빨래를 1년간 자연건조해서 줄일 수 있는 탄소배출량이 0.2t이라고 하니 실로 효과적이다. 그다음이 자동차 이용하지 않기와 장거리 비행하지 않기다. 나는 차도 타고 비행기도 탄다. 그에 더해 건조기까지 사용한다. 결국 내가 제대로 하는 유의미한 기후 위기 대응은 비출산 하나뿐인 셈이다.
이렇게 방만하게 살면 망해도 싸다.
30년 뒤의 나는 아마 너무 덥고 더럽고 불쾌한 도시 한복판에서 2022년의 서울을 그리워할 것이다. 나는 수많은 SF에서 묘사한 디스토피아나 아포칼립스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소시민인 나를 쉽게 상상한다. 그 늙고 병든 나는, 세상이 이 꼴 날 줄 모르고 국제선 비행기 타기(타지 않으면 연간 탄소배출량 1.6t 감소)를 좋아하고, 계절에 안 맞는 과일을 사먹고, 육식주의자라며 고기를 구워 먹던(채식 시 연간 탄소배출량 0.8t 감소) 젊은 시절의 나를 떠올릴 것이다. 아마 기후 위기에도 그렇게 대충 살았다고 후회하겠지.
그런데 70대인 나라는 등장인물을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면, 이 인물이 후회만 하지는 않는다. 미래의 나는 두번 오지 않을 낭비의 시대에 청춘을 보냈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솔직히 아주 조금, 안도한다. 더운 여름날 에어컨을 튼 차로 이동하고, 음식이 남아 주기적으로 냉장고와 냉동실을 치우고, 갓 건조된 뽀송한 수건을 쓰고, 수천 미터 상공에서 나는 비행기에서 술을 마시고 이부자리를 펴던 그 사치의 기억. 이 노인의 만족감이 문득 고개를 들 때마다 나는 기후 위기의 섬뜩함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나는 위기를 초래한 많은 낭비 속에서 이미 평생의 반 정도를 살았다. 시간이 흐르는 한, 우리 세대가 향유한 만큼 비용을 지불해야 할 날은 오지 않는다. 방만하게 살아 망해도 싼 세대가 아니라 그다음, 혹은 그다음 다음 세대가 망하게 되는 것이다.
이 이기적이고 무책임해지기 쉬운 재난의 본질 앞에서 나는 문득 망연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