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윤석진의 캐릭터 세상21ㅣ<왜 오수재인가> 오수재
윤석진의 캐릭터로 보는 세상“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
생존과 처세에 관한 표현이다. 권력 구도가 급변하는 시기의 정치권이나 소비자의 기호가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서 최후의 승자에 관해 평가할 때 주로 사용한다. 사는 것이 전쟁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일상의 관용구가 되었다. 세상이 각박할수록 생존을 걱정하고, 그만큼 자신의 신념과 위배되는 처세술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이 늘었다는 방증이다. 사는 게 원래 그렇다지만, 그래도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은 지키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데, 뾰족한 수를 찾기 어렵다. 사람들은 때로 자기방어 기제를 작동하면서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공격만이 최선의 방어라는 판단 때문이겠지만,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운 시절이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야만이 판치는 대형 로펌의 민낯을 다루는 <왜 오수재인가>(에스비에스)의 ‘오수재’(서현진)는 독선과 위악의 처세술로 생존을 모색한다. 고졸 학력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람들 마음을 얻는 좋은 변호사”가 되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고자 했다. 국선변호사 시절 여중생 살해사건 용의자의 결백을 믿고 무죄를 주장했으나, 법정은 그의 변론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힘이 없어서 의뢰인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에 괴로운데 사법연수원 시절 가르침을 받았던 교수는 “순리대로”를 강조했다. 교수의 조언에 따라 검사장 퇴직 후 로펌을 설립한 ‘최태국’(허준호)의 세계로 편입했다.
그러나 ‘고졸 출신 여성 변호사’ 오수재는 법조 엘리트의 남성 중심적 위계질서에 짓눌려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웠다. 온갖 모멸과 멸시에 포박당한 채 “어리바리 듣보잡” 취급을 견뎠으나, 생존을 보장받지 못했다. 급기야 로펌 회장 최태국 아들의 아이를 임신한 채 연수라는 명목의 미국행을 강요받고 버려졌다. 미국에서의 자살 시도 끝에 로펌에 복귀한 그는 최태국 “아들이 장난치다 버린 여자”라는 자신의 치부를 최태국의 치부로 돌리면서 출세와 성공을 위한 거래를 성사시켰다. 그리고 법이 불공정과 불공평한 세상의 마지막 보루인 만큼 법조인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지만, 실상은 정치와 자본 권력을 위한 도구로 법을 이용하는 최태국의 독선적이고 위악적인 세계의 질서를 내면화하였다.
세상 모든 것을 장악하겠다는 욕망으로 채워진 최태국의 세계를 지배하는 질서는 민주공화국의 법이 아니다. 최태국의 말이 곧 법인 세계에서 “고작 한번 까불었다고 버리기엔 아까운 아이” 오수재는 독하고, 재수 없고, 싸가지 없는 처세술로 로펌 매출 신장의 일등 공신이 되었다. 마침내 생존을 넘어 최정상을 넘볼 수 있는 자리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포식자가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세계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오수재는 자신이 로펌의 주인이라 생각했지만, 최태국은 그를 “살랑대는 개새끼”로 여겼다. 그러니 “일 시켜 먹기 딱 좋은” 오수재가 ‘국내 10대 로펌 최초 여성 대표변호사’로 취임하여 ‘고졸 출신 변호사의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오수재는 최태국의 방식으로 승승장구했다. 분식회계로 2조원을 빼돌린 재벌 회장을 향한 대중의 분노와 관심이 2심까지 이어지지 않는 점을 이용하여 집행유예를 끌어내고, 그 대가로 거액의 수임료를 챙기면서 스타 변호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최태국이 있었다. 목숨 걸고 정의를 외치는 인간의 정의롭지 못한 속내를 들추고 의도가 순수하지 못한 자의 흐릿한 태도를 간파하면서 “내 의뢰인은 절대 빵에 보내지 않는”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배경도 최태국이었다. “서로의 치부를 하나씩 물고” 있는 공생 관계라 생각했지만, 애초 아무것도 없었던 오수재는 많은 것을 가진 최태국에게 끊임없이 휘둘리는 존재에 불과했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강해 보이지만, 그의 내면은 황폐했다. “모든 게 딸리는 제가 여기까지 올라왔을 땐 목숨 걸고 올라온 거예요. 그런 저를 건드리시면 다치세요. 아시겠어요?”라는 오수재의 겁박은 “사람들한테 욕먹고 뒷담화 들어도 다 개무시하고, 절대 약한 모습 안 보이려”는 절규였다. 반드시 성공하여 그 누구도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만들겠다는 다짐도 소용없었다.
틈만 나면 자신의 인생을 쥐고 흔드는 최태국의 방식으로 생존하겠다는 오수재의 선택이 그의 인생을 망가뜨린 꼴이다. 법정에서 정경유착 비리를 설거지하는 ‘법 기술자’ 오수재가 자신의 민낯이 드러날까 두려워하며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 인지부조화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그를 가장 잘 아는 친구가 묻는다. “그렇게 살아서 행복하니?” 그는 대답하지 못한다. 살아남았지만, 오수재는 강한 자가 아니다. 그래서 묻는다. “왜 오수재인가?” 공격만이 최선의 방어라지만, 매일 전쟁 같은 일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충남대 국문과 교수·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