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나의 해방일지’ 결말 두고 해석 분분, “클럽 형 들고 튄 돈 갚고 미정에게”, “좀 더 명확하게 짚어주지” 아쉬움도
그래서 구자경은 어디로 갔을까? 지난 29일 <나의 해방일지> 마지막회를 두고 시청자 의견이 분분하다. “미정과 구씨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명확하게 보여주지도 않고, 그저 시청자의 ‘짐작’에 맡겼기 때문이다.
‘문제’의 장면은 이렇다. 구씨는 현진형이 도박 빚을 갚으려고 돈을 들고 튀자 갈등한다. 미정이 “환대해주라”고 조언하자 고민하다가 옷장 서랍에서 돈을 꺼내 가방에 담아서 나온다. 평소 긴 코트와 다른 짧은 가죽점퍼. 편의점에서 술을 사고 나오다가 떨어진 오백원이, 맨홀 가운데에서 멈춘다. 아슬아슬하게 놓여있을 뿐, 빠지지 않은 ‘운 좋은’ 상태. 구씨는 무슨 결심이라도 한 듯 노숙자한테 술을 주고 웃으며 걸어간다.
돈 들고 미정이랑 잘 살려고 가는 것이다, 현진형 도박 빚 갚고 미정이랑 다시 시작해보려고 가는 것이다 등등 이때부터 해석 대결이 시작됐다. <나의 해방일지>의 마지막회를 어떻게 봐야 할까.
정덕현 평론가 = 극적이지는 않지만 삼남매와 인물들이 자신만의 ‘해방’ 하나쯤은 할 거라고 예상했다. 마지막회는 그걸 무리 없이 담아냈다. 구씨의 엔딩은 과하지 않으면서도 희망을 향해 나가는 모습으로 잘 처리됐다. 염미정이 하루에 5분만 숨통이 트여도 살만하다고 했던 말과 아침마다 지겹도록 찾아오는 환멸과 적대를 웃으며 환대하라고 했던 말이 구씨를 조금씩 바꿔놓는다. 클럽의 형이 뒤통수 치고 도망치자 평소처럼 분노하기보다 “환대할 거니까 살아서 보자”고 말하는 대목이 그렇다. 돈을 챙겨 어딘가로 가면서 문득 엘리베이터에서 아이를 보며 몇 초간, 주머니에서 빠진 500원짜리 동전이 맨홀에 간신히 걸려 있는 걸 발견하고는 몇 초간 숨통을 틔운다. 여전히 술을 습관처럼 편의점에서 사지만 그런 숨통을 경험한 그는 술을 노숙자에게 주고 걸어나간다. 그게 쉽진 않겠지만 염미정을 향한 걸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여기서 500원짜리 동전이 간신히 맨홀에 걸려 있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그건 꼭 구씨가 자신의 현재 상황을 보는 것만 같은 관조적 관점을 주었다. 위태롭지만 운 좋게도 완전히 시궁창으로 빠지진 않은 삶 같은 게 희망적으로 보였다.
염미정의 해방은 무표정이 구씨를 만나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바뀔 때 이미 벌어지고 있었던 거로 해석된다. 기계적으로 해야 버텨낼 수 있는 스트레스를 감당하는 인물. 염미정과 구씨가 서로를 추앙하며 웃기 시작하는 대목에서 이들은 스스로를 “사랑스럽다”고 여기는 해방을 느끼지 않았을까. 가장 인상적인 성장을 보여준 인물은 창희다. 창희는 자동차 에피소드에서 보여주듯이 세속적인 물욕과 그걸 가질 수 없는 현실 사이의 공백을 끝없는 수다와 주절거림으로 채우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구씨가 준 차를 몰면서 사실상 점점 감흥을 잃어가고, 무엇보다 죽음을 경험하면서(어머니, 현아의 전 남친) 그 집착에서 벗어난다. “일원짜리가 아닌 그냥 산이었다”는 걸 받아들이고, 엉뚱하게도 자신에게 운명처럼 도달한 ‘장례지도사’의 길을 받아들인다. 기정은 태훈에게 연민도 존경도 사랑도 한 덩어리라고 고백함으로써 목 부러진 장미와 매일 계란빵을 사다 주는 태훈의 사랑을 확인한다. 아버지도 가족들이 자신을 건사해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자식들에게 “너희들이 나보다 낫다”고 인정한다. 그 역시 가장으로서의 집착을 내려놓는 해방의 길을 찾은 것. 사랑이야기에서 해피엔딩은 두 사람이 결혼하거나, 사랑을 확인하는 키스로 정형화되어 있다. <나의 해방일지>에서 해피엔딩은 각자 가진 집착이나 삶의 시스템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틀에서 한 걸음 나가는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거기에 맞는 해피엔딩을 박해영 작가 특유의 색깔로 풀어냈다. ▶만족스러운 엔딩이다.
남지은 기자 = <나의 해방일지> 작품의 느낌에 견주면 흐름에 맞는 결말이다. 묘한 분위기도 잔잔한 흐름도 잘 맞아 1회부터 16회가 한 회처럼 이어졌다. 그러나 조금만 더 명확했으면 어땠을까? 지금은 너무 흐릿하다. 불친절하다. 당장 구씨가 돈을 갖고 어디로 가는지부터 헷갈려하는 이들이 있지 않나. 구씨는 아침마다 찾아오는 것 같은 지옥같은 생활을 잊으려 알코올중독이 됐다. 구씨가 자신의 뒤통수를 친 현진이형을 용서하지 않으면 그 돈을 찾아다니느라 지옥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아침마다 찾아오는 그 사람들을 환대해주라”는 미정의 얘기에 자신의 돈으로 현진이형이 들고 튄 돈을 메우고, 현실을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랬더니 엘리베이터를 꼬마가 잡아주는 등 사소하지만 운이 따르는, 잠시 설레는 일이 생긴다. 하지만 돈 가방을 들고 미정에게 나아가는 것이라고 보는 시청자들도 있다. 시청자들은 염미정의 웃는 얼굴과 "내가 너무 사랑스럽다"는 대사로 마지막을 짐작하며 각자 창작의 나래를 펼친다. 아직도 모르겠다며 마지막회, 마지막 장면을 설명해달라는 글도 종종 눈에 띈다. 때론 열린 결말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너무 열린 게 아닐까 싶다. 방영 내내 뭔가 마음대로 속시원하게 표현하지 못했던 이들이기에 누구 한명이라도 명쾌해졌으면 하는 마음에서일까. 불친절한 게 서운하기도 하다. 14회, 두 사람이 다시 만나 이름을 물었을 때, 종영했다면 더 깔끔하지 않았을까? “이름이 뭐예요?” “구자경입니다.” ▶ 글쎄, 불친절한 게 난 왜 서운할까
김효실 기자 = <해방일지> 결말을 보며, 미정이 ‘추앙’을 경유해 마침내 스스로를 ‘사랑’하게 됐구나 싶어 감격했다. ‘사랑’의 의미에 매우 엄격한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이기심과 자기애를 구분한다. 나 하나만 챙기는 건 사랑이 아니다. 타인과 접속해 서로의 생명력·잠재력을 고양하는 게 자기애다. 그래서 그는 사랑에 ‘빠진다’는 수동적 표현 대신, 사랑에 ‘참여한다’는 능동적 표현이 맞는다고 주장한다. 그런 사랑을 위해선 끊임없는 노력과 배움이 필요하다. 내가 나를 사랑하려면, 타인과의 연결이 필수다. 누가 누구를 일방적으로 구원해주는 관계는 사랑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의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줘야 한다. 망가지는 방향이 아닌, 더 나은 사람이고자 하는 방향으로. 결말이 비극이 아니라 다행이고, <해방일지> 답다고 본다. <해방일지>는 우리 삶의 많은 풍경이 비극이어도, 삶이란 이런 비극적 풍경을 충분히 감내하고도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줄기차게 얘기해왔으니까. 굳이 결말에 와서까지 비극을 끌어들일 필요가 없다.
미정은 구씨의 전화를 받고 전 남친의 결혼식을 망치려던 계획을 수정하고, 구씨에게 “(타인을) 환대하라”고 조언한 뒤 전 남친이 성추행범으로 몰릴 상황을 모면하게 돕는다. 타인의 형편없음을 증명하면서 나 자신도 망가지는 방향을 선택하지 않는다. 구씨는 미정과의 상담을 통해 하루 5분이라도 ‘살아있음’을 느끼고자 애쓰고, 술 취하지 않은 맨정신일 때도 다정해보려 노력한다. 미정과 구씨의 관계는 사랑이다. 미정은 구씨를 통해, 구씨는 미정을 통해 자기애를 실천한다. 나 자신, 타인, 삶 자체를 사랑하는 능력을 회복했다. ‘추앙’은, 두 사람이 사랑에 참여하기로 매 순간 ‘결심’하는 행위를 뜻하는 게 아닐까 싶다. 심리학적 용어로는 ‘자기 자비’를 함께 훈련한다는 느낌. ▶ 엔딩, 좋기만 한걸
한겨레 남지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