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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일지’ 이기우 “약하다는 느낌에서 벗어나기…해방클럽 계속된다”
한겨레제휴기사 2022-05-30

[한겨레]

JTBC <나의 해방일지> 이기우 인터뷰 해방클럽 멤버, 기정 연인 ‘조태훈’ 역할

조태훈(이기우), 염기정(이엘). JTBC 제공

“그냥…우리끼리 하죠, 아무거나. 동호회 들기 전까진 계속 불러댈 거 같은데. 우리 셋이 한다고 하고, 안 모여도 상관없잖아요.”(태훈) “우리…. (동호회를) 진짜로 하는 건 어때요? 해방클럽. 전 해방이 하고 싶어요. 해방되고 싶어요. 어디에 갇혔는지는 모르겠는데 꼭 갇힌 거 같아요. 속 시원한 게 하나도 없어요. 갑갑하고 답답하고. 뚫고 나갔으면 좋겠어요.”(미정)

염미정(김지원), 박상민(박수영), 조태훈(이기우). 드라마 장면 갈무리

직원의 ‘행복’을 지원한답시고 사내 동호회 가입을 은근히 강권하는 회사에 지친 세 사람. 집이 멀어서, 같은 부서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돌봐야 할 가족이 많아서 등등. 각자의 이유로 사내 동호회 가입을 거부하던 염미정(김지원), 조태훈(이기우), 박상민(박수영)은 마침내 세 사람만의 동호회 ‘해방클럽’을 결성한다. 각자 무엇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은지, 해방을 위해 어떤 걸 해보고 싶은지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 나눈다. 비록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제이티비시)에서 분량은 많지 않았지만, 많은 시청자에게 ‘힐링 타임’을 선물했던 해방클럽 멤버들. 그 가운데 태훈은 ‘산포 삼남매’의 맏이인 기정(이엘)과 애정관계로도 얽히면서,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지난 26일 태훈 역할을 맡은 배우 이기우(40)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라운드 인터뷰로 만났다.

이기우는 박해영 작가의 전작 <나의 아저씨>(티브이엔)를 “인생 드라마” 중 하나로 꼽으며,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배역이 크지 않아도 어떤 역할이든 무조건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출연을 수락했다”고 말했다. “(박해영 작가가 전작에서도) 주연 배우들만이 아니라 모든 인물이 다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작품을 쓰셨잖아요. 그런 드라마가 흔치 않으니, 이런 기회는 놓치면 후회한다고 생각했죠.”

조태훈은 염미정과 같은 신용카드 회사에 다니는 직장 동료이자, 염기정의 학교 동창 조경선(정수영)의 동생이다. <해방일지>에는 삼남매가 두 쌍 나오는데, 줄거리를 이끄는 ‘산포 삼남매’ 염기정·미정·창희, 그리고 조연인 조희선(김로사)·경선·태훈이다. ‘조씨네 삼남매’의 부모님은 오래전 돌아가셨고, ‘돌싱’이자 ‘싱글대디’인 태훈은 두 누나와 함께 딸 유림(강주하)을 돌보며 산다. 태훈은 미정과 함께 만든 ‘해방클럽’에서 본인의 해방을 도모하는 한편, “아무나 사랑해보겠다”는 기정의 해방 서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등장 분량은 적어도, 아빠, 동생, 연인, 직장인 등 다면적인 역할을 골고루 보여줘야 하는 ‘생활 밀착형’ 연기가 중요한 인물이었다. 이기우는 “조태훈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저의 역할보다는 태훈의 누나들, 딸, 그리고 기정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면서, “특히 (태훈 캐릭터 형성의) 100중의 10은 태훈이고 나머지 90은 기정이 만들었다”고 말했다. 기정 역할을 맡은 배우 이엘과의 연기 호흡도 좋았다.이기우의 엠비티아이(MBTI)는 외향적 성격을 뜻하는 E로 시작하지만, 극 중 태훈을 비롯한 해방클럽 멤버들은 내향적 성격(I)이 강하다. 해방클럽 첫 모임에서 세 사람은 서로 마주 보고 앉는 탁자 대신, 일렬로 앉는 탁자를 선택한다. “마주 보고 앉는 게” “사람을 정면으로 대하는 전투적인 느낌”이라 불편하다는 박 부장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기우는 “저와 부장님(정수영)은 말이라도 하는데, 미정은 해방클럽에서조차 ‘자기만의 방’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말수가 적다. 그래도 멤버들은 다 친하다”며, “해방클럽 멤버 셋이 키, 나이 등이 다 다르니까, 셋을 모아놓고 보는 재미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JTBC 제공

‘해방일지’를 써보라는 회사 행복지원센터 담당자 소향기(이지혜)의 제안으로, 해방클럽 멤버들은 자신만의 노트를 만들었다. 태훈은 첫 장에 “약하다는 느낌에서 벗어나기”를 쓴다. 태훈이 7회 해방클럽 모임에서 “엄마 아빠 돌아가시고 나서 저한테 약하다는 느낌이 생긴 것 같아요. 내가 이 느낌에서 해방돼야 내 딸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담담하게 이 문구의 의미를 설명하는 장면은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감독님이 (그 장면 연기를)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게’, ‘담백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어요. 그래서 감정을 빼고 툭툭 나열했는데, 그 방식이 태훈의 이야기를 더 잘 전달한 것 같습니다.”(이기우)

해방클럽에서 자신의 “약점”이자 “힘겨움의 원인”을 직시한 태훈은, 딸 유림에게도 기정을 좋아하는 이유로 “아빠를 쉬게 해줘”라고 털어놓는다. 기정의 지속적인 ‘추앙’을 받으며, 자신의 약점을 다시 한 번 받아들인다. 미정의 퇴사 뒤 해체됐던 해방클럽은, 29일 방송된 마지막 회에서 ‘리부트’를 예고한다. “어느 날은 좀 된 것 같고, 어느 날은 도로아미타불이지만, 그래도 전혀 없다고는 말 못 하는”(이지혜) ‘해방되기’ 실천을 이어가기 위해서다. 이기우는 “해방클럽 강령 중에 ‘정직하게 보겠다’, 속으로라도 스스로에겐 정직하면 된다는 말이 좋았다. 인간 이기우에게도 크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해방일지> 14회가 방영된 뒤, 이기우는 자신의 SNS에 수년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일을 회고하며 “나에게 위로를 주는 이 드라마가 한없이 사랑스럽고 고맙기만 하다”고 기록했다. 14회에서 ‘산포 삼남매’의 엄마 곽혜숙(이경성)의 유해 가운데 인공관절이 드러난 장면을 보며, 자신의 옛 기억도 어루만졌다는 것이다. 이기우는 “사실 이번 작품만큼 연락이 오랫동안 뜸했던 친구들에게 연락이 많이 온 건 처음이다. 일반 직장을 다니는 친구들도 드라마에 공감을 많이 느끼더라”며 “제가 14회 장례 장면을 보며 저와 닿아있는 장면이라고 느낀 것처럼, 시청자분들도 각자 자신의 삶 일부와 닿아있다고 느낀 부분들이 많으신 것 같다”고 말했다.

네버다이엔터테인먼트 제공

이기우는 2003년 영화 <클래식>으로 데뷔한 20년차 배우다. 그는 “저를 객관적으로 돌이켜봤을 때, ‘이기우의 인생 캐릭터는 <클래식>의 태수’라는 평가에 스스로도 공감하고, 때로 스스로를 다그치는 부분이다. 20대와 30대를 ‘태수’로 버텨왔다면, 40대에 만난 ‘태훈’이라는 캐릭터는 앞으로 어떤 연기를 해야 하는지 제시해주는 것 같았다”며, “<해방일지>는 배우 이기우에게 매우 크고 친절한 이정표인 작품”이라고 말했다.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을 마치고 나니, 앞으로도 더욱 아무 작품이나 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저를 아무도 안 써주면 그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해야겠지만 (웃음) 단순히 출연료만 주는 작품이 아니라, ‘인간 이기우’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는 작품을 하면 좋겠구나. 이번 드라마를 통해 그런 걸 더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는 또한 “본인이 해방되고 싶은 건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겉보기에) 화려하게 보이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강박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정도의 차를 타야 해’, ‘이런 신발, 이런 가방을 메 줘야 해’, ‘여행 가려면 이런 데는 가줘야지’ 같은. 저는 늘 그런 강박이 내 인생에 필요 없는 강박이란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해방일지>를 촬영하고 드라마를 보면서 최근 몇 년 동안 제가 그런 강박에서 해방되려는 노력을 해왔다는 걸 깨달았다”고 답했다. 지난해 유기견 ‘테디’를 입양한 그는, 테디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자신의 “쉼표이자 느낌표”라고 덧붙였다.

한겨레 김효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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