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훈의 이 칸 저 칸] 할리우드 스타 실물 영접 해프닝 칸에만 가면 톰 크루즈 볼 줄 알았더니 “스타 얼굴 직접 보기는 하늘의 별 따기”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크리스틴 스튜어트 핸드폰으로 찍는데 보디가드의 끈질긴 방해
지난 24일 오전(현지시각), 프랑스 칸국제영화제 ‘팔레 데 페스티벌’에서 열린 경쟁 부문 초청작 <미래의 범죄> 공식 기자회견에 앞서 주연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칸/로이터 연합뉴스
“칸에 가면 톰 크루즈 실물 영접할 수 있나요?” 칸에만 가면 할리우드 배우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 나는 이번이 아홉번째 칸 출장인 타사 선배에게 물었다. “배우들은 정해진 동선에 차량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얼굴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일 텐데…. 레드카펫 취재는 승인받은 사진기자들만 가능하고.” 선배는 팬심으로 진심이던 내게 웃으며 말했다. 결국 우리가 본 이미지들은 사진기자들의 카메라를 거친 것이었구나. 톰 크루즈 실물 영접은 다음 생에나 가능한 것인가. 하늘의 ‘별’이 지상에 내려오는 순간은 정해져 있었고, 그 순간을 잡는 것은 소수의 복받은 자들이었다. 난 실의에 빠졌다.
그러나 별을 잡는 별의별 순간이 없진 않았다. 지난 24일 오전(현지시각)이었다. 박찬욱 감독의 경쟁부문 초청작 <헤어질 결심> 공식 기자회견장으로 이동 중이었다. ‘팔레 데 페스티벌’ 콘퍼런스룸 앞은 한국 기자들을 비롯해 각국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콘퍼런스룸에선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경쟁부문 초청작 <미래의 범죄> 기자회견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외쳤다. “크리스틴 스튜어트다.”
24일 오전(현지시각), 프랑스 칸국제영화제 ‘팔레 데 페스티벌’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마치고 엘리베이터로 이동하는 크리스틴 스튜어트. 자신을 부르는 취재진의 요청에 머쓱해하며 지나가고 있다. 칸/오승훈 기자
난 앞으로 달려나갔다. 통제선 너머로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과 배우 레아 세두가 보였다. 핸드폰 동영상 모드로 촬영하는데 앵글 바로 앞 한 덩치 하는 민머리 보디가드 때문에 화면이 가려졌다. 아~. “비켜달라”고 하려다 얼굴 보고 생각했다. ‘내가 자리를 옮기면 되지, 뭐.’ 그 순간 화면의 사각에서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갑자기 나타났다. 별의 현현이었다. 동영상을 찍는데 민머리가 계속 화면을 가렸다. 아놔~. 민머리는 별의 진로를 가리는 혹성이었다. 혹성아~, 별이 진다고! 옆으로 이동해 ‘혹성탈출’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혹성은 별을 중심으로 공전하고 있었다. 그 사이 취재진의 포즈 요청에 난처한 표정을 짓던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어느새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있었다. 몇초 동안 지상에 내려온 별이 그렇게 다시 사라졌다. 혹성은 그때까지 화면을 가리고 있었다. ‘악~ 이건 ‘미래의 범죄’라고!’ 핵폭탄을 발사해 혹성을 폭파시키려 한 영화 <아마겟돈>이 ‘띵작’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난 혹성에게 말했다. “넌 정말 잔인한 혹성이야.” 혹성은 ‘왓 더 헬?’이라는 표정이었다.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가 영혼의 비지엠(BGM)으로 내 속에서 재생됐다.
23일 저녁(현지시각), 프랑스 칸국제영화제 ‘팔레 데 페스티벌’ 앞을 경쟁부문 초청작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의 여주인공 찰비 딘 크리크가 지나가고 있다. 칸/오승훈 기자
물론 할리우드 스타는 아니었지만 혹성의 방해 없이 실물 영접을 제대로 한 경우도 있었다. 23일 저녁, 박 감독의 <헤어질 결심> 공식 시사가 끝난 뒤 관람객들을 붙잡고 되도 않는 영어로 소감을 묻고 있었다. 프랑스 영화 평론가라는 중년 남성이 “~시옹”을 무지하게 써가며 박찬욱 감독의 영화 미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던 그 순간, 또 다른 별이 내 앞에 왕림했다. 경쟁부문 초청작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의 여주인공 찰비 딘 크리크가 지나가던 것. 남아공 출신의 모델이자 배우인 그는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에서 모델 출신 인플루언서 ‘야야’ 역할로 엉뚱하면서도 사랑스런 매력을 한껏 발산했다. 이틀 전 이 영화를 재밌게 본 나는 한눈에 그를 알아봤고(얼굴이 너무 작아 못 알아볼 수도 있다) 휴대폰으로 찍기 시작했다.
프랑스 칸국제영화제 ‘팔레 데 페스티벌’ 안 콘퍼런스룸 앞에서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할리우드 배우 앤 해서웨이. 칸/공동취재사진
내게 ‘뭥미?’라는 표정을 짓던 프랑스 평론가 ‘시옹’은 찰비를 발견하곤 자신도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웃겼던 내가 ‘시옹’에게 말했다. “라 쿠퍼라시옹(협력).” 내 말은 안중에도 없던 ‘시옹’은 찰비 딘 크리크에게 팬이라며 인사했다. 나도 질세라 “연기 너무 좋았다”는 말을 건넸다. 찰비 딘 크리크는 눈인사로 화답했고 애초 인터뷰는 안드로메다로 가게 된 ‘시옹’과 난 찰비 딘 크리크 촬영 뒤 각자 갈 길을 갔다.
칸에 자주 출장을 온 타사 선배도 별을 잡은 순간이 있었다. 경쟁 부문 초청작인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아마겟돈 타임>으로 칸을 찾은 주연배우 앤 해서웨이를 촬영한 것. 동영상 속 앤 해서웨이는 팬들에게 사인을 해준 뒤 자신만의 ‘웨이’로 사라졌다. 별의 순간을 잡는 일은 기쁘고도 아쉬웠다. 별을 보려거든 혹성을 조심하라. 하긴 혹성이 별을 가려도 별의 존재는 사라지지 않으니 너무 슬퍼하지 말기를. 숙소에 돌아온 나는 자기 전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를 들었다. “어제는 별이 졌다네/ 나의 가슴이 무너졌네~”
한겨레 오승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