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오승훈의 이 칸 저 칸] ‘다음 소희’ 정주리 감독 인터뷰 칸 영화제 비평가주간 폐막작 영화 ‘도희야’ 이후 8년 만에 칸 찾은 감독 실화 ‘콜센터 실습생 사망사건’이 모티브 “아이들에게 벌어진 고통스러운 일 알고 싶었다”
칸 비평가주간 부문에 초청된 <다음 소희> 정주리 감독이 칸 해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너무나 한국적인 이야기고, 심지어 저도 잘 몰랐던 사건에서 시작한 영화여서 과연 외국 관객들의 공감을 받을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상영회 때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보편성의 힘이랄까요. 한 아이가 겪는 고통스러운 일을 바라보며 ‘어떤 시스템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됐을까’ 하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제75회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된 <다음 소희>로 칸을 찾은 정주리 감독은, 25일 오후(현지시각) 프랑스 칸에서 이뤄진 한국 취재진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 감독은 전작 <도희야>로 2014년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후 8년 만에 다시 칸을 찾았다. 특성화고 학생인 소희(김시은)가 콜센터에서 실습생으로 일하게 되면서 겪는 일을 그린 <다음 소희>는, 2016년 전주에서 실제로 일어난 콜센터 현장 실습생 사망사건을 모티프로 한 작품.
“에스비에스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고 사건을 알게 됐어요.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지?’라는 분노에서 시작했어요. 무엇보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싶었죠. 관련 기사들을 읽으면서 지난해 1월부터 시나리오를 썼어요.” 그는 “아직 성년도 되지 않은 아이들이 도대체 왜 이런 일을 겪는지 기가 막혔다”며 “영화를 준비하면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돼 억장이 무너졌다”고 했다.
정 감독의 분노에서 비롯된 질문이 이날 상영한 <다음 소희>엔 담겨 있다. 학대받는 소녀와 한 여성의 연대를 그린 전작 <도희야>보다 직접적인 느낌이다.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마지막까지도 직접적이고 설명적인 부분을 최대한 덜어보려고 했어요. 그러나 반드시 해야만 하는 말들이기도 했어요.”
‘다음 소희'는 콜센터 현장 실습생으로 일하던 소희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전작에 이어 이번 작품에도 경찰로 출연한 배두나는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주는 인물. 형사 유진 역할로 후반부에 출연하는 그는 사건 관련자들에게 호통치며 하나씩 드러나는 진실에 분노한다.
정 감독은 시나리오를 쓸 당시부터 유진 역할에 배두나를 염두에 두었다고 했다. “유진이라는 인물을 떠올린 것도 배두나의 영향이 컸어요. 끝까지 관객을 사로잡는 독보적인 아우라를 가졌고, 이 캐릭터를 충분히 구현해낼 수 있는 유일한 배우라 생각했습니다.”
정 감독이 밝힌 배두나 캐스팅 과정은 평소 두 사람의 신뢰 관계를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본격적으로 제작이 시작되는 단계에서 배두나씨에게 시나리오를 보냈어요. 밤에 메일로 보냈더니 그 다음 날 아침에 ‘빨리 만나자’고 하더라고요. 와서 하는 말이 ‘얼굴 보고 캐스팅 제안을 수락하고 싶었다’였어요.(웃음)”
미국에서 진행되는 촬영 일정으로 이번 칸국제영화제에 참석하지 못한 배두나를 두고 정 감독은, “지금 같이 없는 게 너무 한스럽다”며 “영화 구상 때부터 영화제에 온 지금까지, 배두나씨는 내내 제 굳건한 동지”라고 말했다.
한겨레 오승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