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다시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를 찾았다. 2019년 연말에 새로 발급받은 여권은 그간 책상 서랍에서 깊이 잠들어 있다가 마침내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첫 도장을 받으며 본래의 쓰임을 증명했다. 칸에는 개막식 전날 도착했다. 상영관 및 행사장인 팔레 드 페스티벌 건물 주변도 둘러보고, 프레스 카드도 발급받고, 남프랑스의 따가운 햇볕에 기꺼이 맨살을 맡긴 채 칸 비치에서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도 구경하면서 칸으로 모이는 기운을 느꼈다. 슬슬 달궈지고 있는 축제의 기운을.
칸의 온화한 날씨만큼 온화한 미소로 영화제의 극한 일정을 버텨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지만, 이내 나의 평정심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루에 2~3편의 영화를 보고 1~2건의 가벼운 미팅과 인터뷰를 하고 더불어 기사 마감까지 해야 하는 일정 때문이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의 칸영화제에선 선착순으로 극장에 입장해 영화를 보았다. 그러니 극장 앞엔 늘 긴 줄이 늘어져 있었다. 이 걸작을 칸에서 보고야 말겠다는 열정과 사명감 때문이 아니라 그저 일을 하기 위해 20~30분씩 길 위에 서 있는 일이 예사였다. 그런데 팬데믹 이후 칸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e-티켓을 사전 예매하는 방식이 도입된 것이다. 큰 수고로움을 덜었으니 쾌재를 부를 일이다 싶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지금도 나는 접속이 되지 않는 온라인 예매창을 띄워놓고 하염없이 F5(새로고침)를 누르고 있다. 하루 종일 불통 상태인 온라인 예매창과 씨름하기 VS 매일 선착순의 압박에 시달리며 줄 서서 영화 보기. 둘 중 뭐가 더 나을까, 괜히 쓸데없는 고민을 하며 다시 한번 미동도 없는 온라인 예매창을 들여다본다.
이 모든 게 행복한 고민과 투정이라는 걸 안다. 배지와 티켓만 있으면 건장한 가드가 지키고 있는 문도 스르르 열린다(정말 예매창만 안 열린다). 올해도 팔레 드 페스티벌 건물 앞에는 수많은 영화 팬들이 ‘OOO 티켓 플리즈’라고 쓴 푯말을 들고 서 있다. 티켓을 구하려는 사람들의 행렬을 보면서, 칸에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생각한다. 그러니 먹통인 온라인 예매창도 용서하려 한다. 불평은 그만 접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