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에 이 글을 쓰고 있다. ‘노동절’이라는 이름조차도 금기시되어 ‘근로자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불려왔고 지금도 불리는 5월1일은 사업장에 고용되어 일을 하는 사람들이 인간다운 환경에서 노동을 할 수 있도록 투쟁한 역사를 기념하는 날이다. 카페에 출근하는 대학생의 주휴수당부터 늦은 시간 사무실을 지키는 회사원의 야근수당까지, 노동법이 보장하는 내용은 많은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것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선물 같은 게 아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 인간이 사회구조 때문에 필연적으로 하나의 부품이 되어야 하더라도 인간성이 박탈된 채 완전한 부품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납득시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싸워왔다. 이것은 우리가 사는 근대사회의 기본 전제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헌법 제10조)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선언은 각자가 하나의 통합된 인간이며 그 사실을 침범할 수 없다는 선언이다. 요컨대 우리는 인간이므로 인간임을 보장해달라.
인간이라는 지위는 참으로 취약해서 인간임을 보장해주지 않으면 인간임을 보장받지 못한다. 인간임을 보장하지 않기는 너무나 쉽다. 부품처럼 쓰면 된다. 돈을 쥐꼬리만큼 주면 된다. 아직도 많은 노동환경이 법과 위법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현장 실습생의 안전은 제대로 보장받고 있을까? 하청의 하청 노동자는 노동환경과 조건을 누구에게 보장받아야 할까? 고용허가제하에서 안전 교육도 받지 못하는 이주 노동자들은 어디에 호소해야 할까?
‘노동자’라는 말의 정의가 변화하는 시대에 질문은 추가된다. 노동계약 대신 사업자 계약으로 배달 플랫폼을 이용해야 하는 배달 기사들은 노동자가 아닌 걸까? 캘리포니아 발의안 제22호를 놓고 벌어졌던 치열한 싸움은 이제 노동자의 권리만이 아니라 노동자라는 지위 자체를 테이블에 올려야 하는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버와 리프트 등의 플랫폼 앱을 통해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보장하는 ‘AB5’ 법안을 민주당이 통과시키자 플랫폼 업체들은 주민발의로 이를 막는 법안 ‘Prop 22’(‘주민발의 법안 22호’)를 냈고 투표를 통해 법안이 통과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캘리포니아주 고등법원은 통과된 제22호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렸다. 물론 플랫폼 사업자들도 여기서 포기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이제는 인간임을 보장하는 방법에 대한 더 구체적이고 치밀한 논의가 필요하다. 지금 당장 노동법을 지키지 않는 사례들부터 앞으로의 ‘노동자 아닌’ 사람들까지, 모두를 위한 메이데이를 더욱 고민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