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넘게 쓰고 있는 마스크는 이제 내 몸의 일부가 된 듯하다. 4월18일부터 모이는 사람의 수도, 업장에 있을 수 있는 시간제한도 없어진다 했지만 너무 오랜만의 자유라 도통 실감이 나지 않는다. 기쁜 마음에 오랜만에 모임을 가진 사람들 모두가 오후 9시가 되자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시계를 보는 것을 보고 학창 시절 오전 수업이 끝나기 전 울던 배꼽시계의 기억이 떠올랐다.
최근 외국에서 반가운 손님이 왔다. 하늘길이 닫히진 않았어도 국경을 넘을 때마다 겪는 격리의 수고가 만만치 않아 바다 건너 오는 손님이 드물었던 시절도 끝나간다. 오랜만에 만나 그간 놓친 소식이 많았지만 전세계가 같은 어려움을 겪었기에 빠르게 업데이트하는 지난 이야기들이 서로 많이 다르지 않았다. 이처럼 속속 제한이 풀리며 다시 교류의 문이 열리지만 이전과는 사뭇 다른 새로운 세상이 오고 있다. 2년여의 짧은 시간 동안 변화의 속도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 끝도 없이 펼쳐진다. 온라인 수업과 원격 회의에서 시작한 비대면은 물리적인 상점가로 확장되고 있다. 최근 가본 시내 재개발구역의 신규 아파트 단지는 1, 2층의 상가가 빈곳 없이 채워져 있었지만 그중 상당수의 점포는 24시간 무인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팔거나 과자를 살 수 있는 수준을 넘어 무인 밀키트 판매점에서 무인 독서실과 헬스클럽, 무인 반려용품점, 심지어 포장해갈 수 있는 무인 갈빗집에 이르기까지 코로나19 팬데믹은 자동화와 결합되며 거래의 매개에서 사람의 존재를 빠르게 없애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에서는 제주도와 같이 풍광이 좋은 곳에 새롭게 원격 오피스를 여는 기업들의 소식도 들려온다. 동료들과 부대끼며 함께 일해오다 팬데믹 동안 선택적 대면으로 일해온 직원들은, 그 이전과 비교해 효율의 차이가 없는 것을 발견하곤 출근이라는 오랜 관행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예전처럼 다시 모여 일하는 것을 원치 않아 그만두려 하자 우수한 직원을 잃기 싫은 기업들이 업무 방식에 유연성을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봄이 왔지만 이 봄은 이전의 봄과 사뭇 다르게 펼쳐질 것을 우린 느끼고 있다. 만나서 거래하고, 함께 일해온 중요한 삶의 방식들이 불과 2년여 동안 바뀌는, 어쩌면 역사의 가장 중요한 변곡점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빠른 자동화와 이에 적응한 사람들은 관계의 효율화와 함께 관행의 불합리함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일상 속 이동과 노동의 수고로움이 경감된 사람들은 그만큼의 자유를 원하기에 새로운 삶의 양식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얻게 된 소중한 시간이라는 자원을 각자 어떻게 쓸 것인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개나리와 목련과 벚꽃이 한꺼번에 피는 혼란스러운 올해 4월처럼 다시 얼음이 녹고 새롭게 시작하는 지금, 우리는 스스로에게 삶의 주체성을 허락하는 새로운 봄이 시작되는 것을 직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