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단어의 성공 스토리는 분명 출판되어야 한다.” 서문에 언급된 문장은 아마도 이 책 자체에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말하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저작이 바로 프레드릭 제임슨의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자본주의 문화 논리>일 것이다. (미주와 찾아보기를 포함해) 800쪽에 육박하는 이 책이 술술 읽힌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시간을 들여 독파할 가치가 있는 문화비평서다.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자본주의 문화 논리>는 문화, 이데올로기, 비디오, 건축, 문장, 공간, 이론, 경제, 영화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는데, 어느 한 파트만 읽기보다는 순서대로의 독서를 권한다. 이 모든 논의가 종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것이 포스트모더니즘적 세계의 특수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모더니즘이 끝나서 포스트모더니즘이 시작된 게 아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명명되었기 때문에 비로소 모더니즘은 막을 내렸다. 그렇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무엇인가. “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을 매우 조심스럽게 정의해본다면, 우선 그것은 역사적으로 사유하는 방법을 망각해버린 시대에 현재라는 시간을 역사적으로 사유하기 위한 시도라 할 수 있다.”
영화에 대한 챕터에서는 ‘향수’가 키워드로 언급된다. 프레드릭 제임슨은 전후(1950년대) 미국에서 윌리엄 포크너와 헤밍웨이가 ‘소도시 미국’이라는 문학적 원자재를 건드리지 않고 우회했다면, 필립 K. 딕이야말로 이러한 소재를 다뤘던 사실상의 계관시인이었다고 운을 뗀다. 장르적으로 과학소설로 분류되지만 고전적 풍자문학과 유토피아 문학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이해될 수도, 싸구려 모험소설의 전통을 잇는 것으로 격하될 수도 있다. 그리고 고딕이 재등장한다. 이번에는 영화 <섬싱 와일드>가 언급된다. “고딕은 사실 궁극적으로 계급적 판타지(혹은 악몽)”다. 전통적 고딕 로망스가 미덕과 악덕이라는 이항 대립을 (신학적 세계관하에서) 만들어냈다면 현대의 고딕은 신학적 잔여물이 제거된 자리에 철저한 성적인 특성이 부여된 상태다. 악(evil)의 구성이 무엇보다 중요해지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말 자체가 이제 낡았다는 인상을 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이 역사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독자에게야말로 이 책이 필요할 것이다.
놀이의 변화
놀이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노동과 마찬가지로 여가 활동 역시 상품화되고, 자유 시간과 휴가가 사무실에서의 일과만큼이나 조직화되고 계획화되었으며, 다양한 새로운 대중 오락 산업의 대상이 되어 첨단 장비와 상품으로 치장되고, 그 자체로 완전하고 철저하게 조직화된 이데올로기적 교화 과정을 담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놀이 역시 더이상 탈소외 노동을 상기시키는 도구로서나 대안적 경험으로서 의미가 크다고 말할 수 없는 실정이다.(28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