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김헌 교수의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 오랜 시간 그리스 로마 신화 강의를 이어오며 학생들 사이에서 호평받았다는 김헌 교수의 이번 책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여러 순간들을 철학, 문학, 언어(그리스어를 차용한 브랜드 이름이 얼마나 많던가) 등과 연결하며 현대적 해석을 덧붙인 결과물이다. 1부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로, 2부 신들의 영광, 3부 영웅의 투쟁, 4부 불멸과 필멸의 큰 챕터 안에 신과 영웅들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짧지만 밀도 높게 실려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와 관련된,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같다고 할까.
예를 들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일화는 ‘프로’(pro)가 ‘앞으로’라는 뜻이며, ‘크루오’(krouo- )는 대장장이가 불에 달군 금속을 모루 위에 올려놓고 망치로 쳐서 길게 늘이는 행위를 가리킨다고 한다. 즉 ‘망치로 두드려 앞으로 쭈욱 길게 늘어나게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되는데, 잠든 손님을 침대에 묶어놓고 침대 길이에 맞춰 그보다 큰 사람은 튀어나온 다리와 머리를 자르고, 그보다 작은 사람은 망치로 두들겨 길게 폈다는 신화 이야기가 이름에 다 담긴 셈이다. 이 침대에 테세우스가 눕게 되는데, 테세우스는 프로크루스테스에게 그가 그동안 해온 것과 똑같은 행동을 한다. 그야말로 신화의 시대에나 있을 법한 얘기 같지만 이 일화는 김헌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나만이 옳다는 독선에 빠져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틀 속에 가두려는 사람들이 바로 현대의 프로크루스테스가 아닐까요?”
‘무사’(Mousa) 여신에 대한 설명은 신화와 음악이 연결되는 인상적인 대목이다. 무사의 영어가 바로 뮤즈(Muse)이고, 그들의 기술이 바로 뮤직(Music)이라고. 저자의 설명은 이렇다. 음악이 신화를 낳았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조각상, 그림 등 다양한 형태로 남아 있지만 그 내용을 가장 풍부하게 전달하는 것은 단연 시인들이 쓴 문자화된 기록이라고. “그 시인들은 스스로 무사의 대변인을 자처했습니다. (…) 무사의 기술인 무시케, 즉 음악은 정보를 담는 수단임과 동시에 그 내용이기도 했고, 그를 통해 쌓이는 교양을 뜻하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김헌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바로 고대와 현대의 교양을 연결하려는 시도다.
자비와 용서만이
복수는 복수를 낳고, 앙심은 앙심을 낳는 법인데, 그 고리를 끊는 것은 복수가 아니라 자비와 용서라는 사실을 선언한 셈입니다. 자비와 용서만이 세상에서 반목과 복수를 사라지게 하고 모든 사람들이 화해하며 한마음 한뜻이 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거죠.(47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