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라는 평범한 이름으로 굳이 개명한 남자가 있다. 원래 이름은 김슬기였고, 소주 한팩을 원샷한 다음 집에 있던 아빠를 따로 불러내어 커밍아웃했지만, 어릴 때부터 돌봐주던 할머니에게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다. 아침부터 밤까지 풀숲을 돌아다니며 놀던 평화로운 소년의 세계는, 게이라는 정체성을 깨닫는 순간 균열이 일어났다. 여자를 좋아하기 위해 억지로 노력하기도 했고, 같은 반 남자를 짝사랑하며 괴로워했다. 어쩌면 게이라는 핑계를 대고 직장-결혼-자식으로 이어지는 소위 ‘정상적인’ 삶에서 일찌감치 달아난 것은 아닌지 스스로 의심했다. 25살에 고깃집 서빙 직원 생활을 그만두고 영화배우가 되자고, 집을 떠나 서울 은평구에 옥탑방을 구했다. 삐걱대는 삶을 대체 왜 계속 살아야 하나 고민할 때 고양이가 새로운 가족으로 왔다. 그렇게 그는 새로운 가족과 함께 일상의 모습을 담아 올리는 유튜버가 되었다.
구독자 약 20만명의 채널 김철수. 영상 속에는 밥을 먹기 바쁜 고양이도 있고, 평범한 주택가 골목길도 있고, 이별을 겪은 후 노래방에서 열심히 노래를 부르는 모습도 있고, 도시의 고즈넉함이 묻어나는 밤 풍경도 있고, 뭉게구름이 푸른 하늘을 두둥실 떠다니는 옥탑방만의 전경도 있다. 잔잔하고 감성적인 영상처럼, 책에도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남편은 주정뱅이, 큰아들은 이혼, 손자는 게이. 우리 할머니, 남자 복, 정말 없네!” 같은 문장은 웃음과 할머니를 향한 애정이 동시에 묻어난다. 애인과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일을 반복하는 이야기는 여느 연인들이 보여줄 징글징글한 그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평범함을 쉽게 드러낼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애인을 따라 병원에 가는 일조차 진료실 직원들이 해코지할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고, 이어 너무 예민한 것은 아닌지 또 의심하게 된다. 김철수로 개명할 때도 판사가 호모포비아거나 법전보다 성경을 더 신뢰하는 사람이면 개명에 반대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완전히 지울 수 없었다. “내가 확신을 갖고 대답할 수 있는 것들은 단지 내 개인적인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이야말로 독자의 마음에 가닿는다는 생각이 든다.
별과 달과 해
“낮에는 햇빛 아래에서, 밤에는 난방 수도관이 스치는 따스한 자리에서 소소한 행복을 만끽하는 별달해가 부럽다.”(17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