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에 한 고압산소 치료 시설에 큰불이 나 사망자가 발생한 뒤 1년이 지나 재판이 열린다. 재판이 열린 나흘간의 이야기를 다룬 <미라클 크리크>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 앤지 김의 데뷔작이다. 앤지 김이 경험한 이민자로서의 삶, 병치레가 잦았던 자녀들, 변호사로 일하며 얻은 지식이 모두 합쳐진 작품인데, 주요 증인이자 사건에 깊이 연루된 사람들의 속내와 법정 내부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번갈아 보여주며 진행된다. 일을 하는 한국인 이민자 유씨 가족이 정착한 작은 마을 미라클 크리크. 그들은 이곳에서 고압산소 치료 시설을 운영한다. 찾는 이들이 늘어나던 어느 날, 산소 탱크 폭발로 치료 중이던 자폐아 헨리와 다른 환자의 어머니인 킷이 사망했다. 시설 운영자인 유씨와 그의 딸을 비롯한 사상자도 발생했다. 이 화재의 원인이 의도적인 방화라는 사실이 밝혀진 뒤, 사망한 헨리의 어머니 엘리자베스가 방화범으로 지목돼 재판을 받는다. 엘리자베스가 아들의 자폐증을 고치기 위해 했던 여러 대안적 치료들이 아동학대일 뿐이라는 주장을 맞받아치는 인물은 뛰어난 변호사 섀넌이다. 재판이 벌어지는 일정 내내 관계자들은 증언대에 서는데, 그들에게는 저마다의 비밀이 있다.
<미라클 크리크>에서는 진상만큼이나 등장인물들의 심리가 중요하다. 특히 어머니들의 심리가. 시설을 운영하던 박 유의 아내이자 그날 사고로 다친 메리의 어머니인 영 유와 사망한 헨리의 어머니인 엘리자베스의 마음을 따라가는 대목들이 특히 그렇다. 엘리자베스는 아들이 사망한 사건에서 범인으로 의심받으며 재판을 받는 중이다. 엘리자베스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철저하게 배척받아 고통스러울 정도의 외로움을 느끼는 동시에 살인죄를 의심받는다는 이유로 아들을 향한 애도와 그리움의 마음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상황은 읽기 힘들 정도로 아프게 묘사된다. 발달장애를 겪는 아이를 둔 어머니들의 어려움도 세심하게 그려진다. 이민자 가정의 아내인 영은 남편이 보험금을 노리고 폭발사고를 낸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 남편도 딸도 그에게 숨기는 것이 있는 듯하다. 마침내 진상이 밝혀지는 것은 또 한 사람이 목숨을 잃은 이후. 소설이 끝난 뒤에도 슬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진실의 순간
그녀가 사랑하는 이 아름다운 사람들이 개울을 따라 이어지는 오솔길 기슭에 서 있었고, 그들 뒤로 키가 큰 나무 그늘이 캐노피처럼 드리워져 있었으며,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녀의 삶이 무너져내린 이 아침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신이 그녀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듯 조롱하는 것 같았다.(35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