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서사시는 왜 현대에도 고전이라 불리는가? 무엇이 특별한가.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가 제2차 세계대전의 암운이 깃들던 1938년에 쓰기 시작해 40년에 처음 발표한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는 <일리아스>를 읽는 독법을 제시하고, 세계의 폭력에 대해 문학이 보여줄 수 있는 존엄을 논한 글이다. 이 글은 이번에 처음 번역·출간되었는데, <마르크스주의적 독트린은 존재하는가>와 함께 한권의 책으로 묶였으며, 시몬 베유의 가장 잘 알려진 저작 <중력과 은총>과 나란히 선을 보였다.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라는 제목과 “<일리아스>의 진짜 주인공, 진짜 주제, 중심은 힘입니다”라는 첫 문장처럼, 이 글은 <일리아스>가 힘에 대한 서사시임을 밝히고 그 주장을 증명하는 식으로 쓰였다. 호메로스가, 또는 고대 그리스인이 왜 힘에 대해 썼는지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가 힘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점이다. 선과 악으로 가르는 대신 승자와 패자가 여기 있고, 오늘의 승자는 내일의 패자가 되며, 패자는 승자를 다른 전쟁의 운명으로 끌어들인다. 모두가 언젠가는 패배한다.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전쟁이 파괴하고 위협하는 평화로운 세계에 대한 간결한 언급은 상세한 죽음의 묘사와 맞물려 슬픔을 자아내는데, 중요한 것은 “소멸할 것이건 아니건 눈여겨볼 가치가 있는 그 어떤 것도 등한시되지 않습니다. 즉 모든 사람의 고통을 드러냅니다”.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이야기된다. 이것은 <일리아스>와 무훈시의 결정적 차이다. 시몬 베유는 <일리아스>를 인용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데,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 번역판은 해당 인용구가 어떤 대목인지를 역자주로 표시해두어 이해를 돕는다.
이 글은 폭력이 만성화된 시대에 읽기 괴로울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일리아스>의 여러 대목을 인용하며 <일리아스>의 서술이 얼마나 특별한 아름다움을 지녔는지 이야기하는 동시에, 시몬 베유는 문장보다 특별한 것이 바로 그 뒤의 세계관에 혹은 사고방식에 있음을 알게 한다. “힘만이 유일한 주인공”인 서사시에서 용기와 사랑은 어떻게 인간의 영혼을 되찾아주는가? 슈퍼히어로가 흔해진 시대에, 거대한 폭력조차 밈이 되는 시대에, 시몬 베유의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는 “전쟁과 정치에서 행사되는 힘의 효과들”을 영광의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처럼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