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한 문학평론가 채광석의 ‘증언’에 따르면 대학 시절 유홍준의 별명은 ‘아가리컬처’였다. 어지간히 아는 게 많은데다 얘기하는 방식이 맛깔스럽고 혹시 ‘침을 튀는’ 정도였다는 뜻이겠다. 그래서, ‘아가리’+‘컬처’라…. 요즈음은 좀 뜸하지만(그는 너무 유명해졌고 바빠졌고 높아졌다) 그때는 꽤 접촉이 잦은 선후배지간이라서 나는 그 별명이 괜히 유쾌했었다.
그가 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말 그대로 장안의 지가를 올렸을 뿐 아니라 ‘전국 문화유산답사 레저 붐’까지 일으켰을 때 ‘갑자기 뜨는 그’를 다소 시기하려는 사람들한테 나는, 그런 게 없을 수는 없겠지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갑자기 뜨다니 무슨 소리야. 그 형 발품에 입품이 장장 십년인데…’라며 서둘러 입을 막곤 했다. 사실 그는 ‘글라이드 보따리’를 든 채 삼천리 방방곡곡을 부르는 이 없어도 찾아다니며 문화유산 ‘홍보대사’를 자처했던 것이다. 조금은 배도 고팠을 시절에. 하지만, 그래서 그랬나. 그 책을 읽으며 나는 ‘컬처’보다는 ‘아가리’에 가깝다는 생각을 언뜻 했었다.
<완당 평전>과는 좀 다른 경로로 만났다. 유홍준이 라디오방송에 나와 책 얘기 하는 걸 우연히 들은 게 첫 경험. 그때 그는 ‘괴’에 대해 말했는데, 나는 다시 ‘아가리’를 떠올렸다. 두 번째 경험은 완당의 서예작품전. 그의 글씨를 보면서 나는 ‘괴’가 ‘고전적 역동’ 혹은 ‘역동적 고전’ 혹은 ‘고전=역동’의 세계라는 것을 대충 감잡고 나의 첫인상이 크게 틀렸음을 깨달았다.
책을 본 것은 그 다음이다. 그래서 그런가, 나는 이 책이 완당의 ‘고전=역동’성을 매개로 유홍준 미학을 한 단계 더 질높이는 경로로 읽힌다. 그런 읽힘은, 사적이겠지만 매우 감동적이다.
유홍준만큼 운동에 치열하면서 동시에 ‘미학 혹은 학문’으로서 미술비평의 수준에 달하기란, 적어도 우리나라 풍토에서는 힘든 일이다. 유홍준처럼 바쁘면서도 동시에 ‘운동권 후배들’ 세심하게 배려하기란, 더 힘들다…. 나는 유홍준을 거기까지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틀렸다.
그는 미술운동의 미학 그 자체를 고전의 수준으로까지 올리려 하고 있다. 그것이 완당 ‘괴’의 핵심 아니겠는가. 다만, 2권은 좀 아쉽다. ‘평전’ 성격이 ‘자료’ 성격으로 어느 정도 허물어지는 것은 아닌지.
이 자리를 빌려, 김지하 시인이 ‘완당’ 서체의 ‘난’을 한점 보내준 것도, 자랑 겸 감사. 이런 형(?)들과 함께 살았다니! 김정환/ 시인·소설가 maydapoe@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