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뀌면서 방송에 나오는 애니메이션들의 수나 모양이 조금씩 바뀌었지만, 새로운 상품을 팔아야 하는 판촉용 애니메이션이나 이전에 여러 번씩 방영돼서 이젠 10∼20초만 봐도 어떤 스토리였는지 줄줄 꿰는 작품들만 줄서 있다(게다가 꼭 재방하는 것은 스토리 느리고 편수가 많은 <드래곤볼>이나 <슬램덩크> 같은 작품이 주를 이룬다).
뭐 자본주의 사회에서야 모든 것이 돈에 기준해 집행돼야 한다는 게 상식이긴 하겠지만, 뭔가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움직임’을 표현해내는,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미덕이랄 수 있는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해 소요되는 경비는 점점 커지고 있는 느낌이다(마치 예전에 공짜였던 물을 이젠 비싼 돈을 주고 사먹어야 되듯이…).
러시아(당시는 소련)의 인형애니메이션 <체브라스카>는 1969년 <안녕 체브라스카>를 시작으로 1971년 <피오네르에 들어가고 싶어>, 1974년 <체브라스카와 괴도할머니>, 1983년 <체브라스카 학교에 가다> 등 총 4편이 제작된 작품. 열대 우림지역에 살던 의문의 동물 ‘체브라스카’가 우연히 사고로 오렌지 상자에 실려 러시아에 오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간판이나 표지판의 글씨가 러시아란 것을 제외하면 어느 나라에 가져다놔도 좋을 만한 도시를 배경으로 인간과 인간처럼 생활하는 동물형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전형적인 어린이 취향의 애니메이션의 노선을 따라가고 있긴 하지만, 귀여우면서 세밀하게 만들어진 인형을 바탕으로 한 인형애니메이션이 지니는 섬세함과 깊이감 있는 영상은 30여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장인의 힘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들은 인간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 모두를 표현해내고 있다. ‘체브라스카’를 처음 발견한 과일가게 주인은 과일을 팔 때 무게를 속이는 나쁜 행동을 하는 반면에, ‘체브라스카’를 발견하자 그가 기거할 만한 장소을 찾아준다. 동물원 우리에서 구경거리가 돼주는 것이 일인 악어 ‘와나’는 아코디언을 잘 켜는 활달한 성격이지만 고독함을 느끼자 온 동네에 자신의 친구가 돼줄 사람을 찾는 벽보를 붙인다. 괴도할머니라 불리는 ‘샤바크냐크’가 벌이는 나쁜 짓은 주로 표지판 바꾸기나 쓰레기통 쓰러뜨리기 같은 심술 수준의 악행으로 마치 ‘꺼심술통’이나 ‘둘리’의 ‘길동이’처럼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있다(실제로 이 할머니가 악행을 벌이는 이유는 단지 ‘유명’해지기 위해서다).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해 물어보는 ‘체브라스카’에게 친구들이 집을 지어주자, 그 집을 아이들의 유치원으로 만들고 자신은 그들의 장난감이 되겠다는 이 작은 동물의 대사는 점점 주머니 속에 욕심이 많아지는 모두에게 들려주고 싶어진다.
올해 상반기 한국영화 중 최고의 흥행작은 당연히 한 시골 할머니와 개구쟁이 소년의 정을 담은 <집으로…>일 것이다. 많이 잊혀졌지만, 여기서도 보여준 ‘남을 배려하고 배푸는 마음’에 대해 생각하고 실천하는 시간을 조금만 늘려도 살기가 각박해지고 흉흉해져 간다는 이야기는 줄어들 것이다. 그 마음을 놓친 지 채 2∼30년이 안 흘렀다. 김세준/ 만화·애니메이션 칼럼니스트 neoeva@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