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들은 왜 산으로 갔을까>를 쓴 아레 칼뵈는 노르웨이의 코미디언이다. 도시에 살던 그가 중년이 된 어느 날, 친구들이 모두 산에 빠져 있어 자신과 소원해졌음을 깨닫게 되면서 그 자신도 산으로 향한다. 이는 비단 중년에만 해당되는 일도, 노르웨이만의 현상도 아니다. “우리는 삶의 어느 한 지점에서 별안간 자연에 애정을 지니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아레 칼뵈는 자신이 예외라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그가 친구들이 산에 빠진 이유를 탐색하는 과정은 일단 책에서부터다. 노르웨이의 모험가 엘링 카게를 인용하면 이렇다. “만약 등산이나 세일링을 통해, 아니 심지어는 걸어서도 세상을 벗어나지 못할 경우, 나는 세상과 나를 단절시키는 나만의 방법을 통해 휴식을 취하곤 한다.” 세상과 인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산에 간다는 말이다. 하지만 아레 칼뵈는 코미디언이므로, 모범답안 말고 픽션에서 자연으로 도피한 이들의 결말도 추적해보었다. “이들 중 10퍼센트는 무엇을 하든 주변인들의 웃음거리로 전락해 남은 생을 살게 되었다. 나머지 90퍼센트는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읽기에 멈추는 대신 직접 밖으로 나가 산에 오르기로 한다.
<내 친구들은 왜 산으로 갔을까>는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을 연상시키는 면이 있다. 알고 보니 산이 적성이고 천성이었다는 간증기가 아니라 불평 많은 도시의 중년 남성이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자연에서의 시간을 굳이 보내기로 한 다음에 구구절절 말을 늘어놓는 책이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두권 다 제법 유머러스하지만, 원래 유머라는 것은 취향을 타는 법이라는 점도 염두에 두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레 칼뵈가 등산을 하다 발견한 통찰을 적어내려간 순간들에는 눈길이 간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여가 시간을 이용해 돈을 벌고 생계를 유지하기 시작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사회민주주의적 성격이 강한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란 노르웨이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복지사회를 만들어 살아왔으나, 일단 자연으로 나가기만 하면 난간도 없는 절벽 끝에 서서 셀피를 찍는다.” 산속 산장에서의 시간을 즐겁게 회상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보고 노르웨이에서의 산행을 꿈꾸게 될 것이다. 책에서 언급된 등산로와 산장 등에 대한 간략한 지도가 책 초입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