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신선한 공기와 사랑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 두 가지가 없어도 절대 살아갈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는 것.” 요 네스뵈의 <킹덤>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 가족의 사랑에 대한 범죄소설이다. 가족을 위한다는 말이 가족의 범주를 정하고, 내부를 지키기 위해 외부를 배척하거나 공격할 수도 있다는 뜻이 될 수 있을까. 요 네스뵈는 두 형제를 중심으로 범죄자의 심리를 추적해간다. 요 네스뵈의 대표작인 ‘해리 홀레’ 시리즈의 연장에서가 아니라 ‘스탠드 얼론’, 즉 시리즈에 포함되지 않는 소설 <킹덤>은 70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로위’라는 주인공이 바라보는 세상을 보여준다.
로위는 어렸을 적 아버지로부터 친구, 애인, 이웃, 지역, 국가 모두를 앞세우는 가치가 바로 가족이라고 교육받는다. 로위는 동생 칼을 잘 돌보려고 노력하는데, <킹덤>은 초반부터 로위의 세계가 칼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로위의 일인칭시점으로 이야기를 진행해가는데, 이 인물의 내면을 탐사하기에 그곳은 텅 비어 있다시피하고, 그의 사념은 오로지 동생 칼에 대한 것뿐이니까. 형제라고는 해도 늘 동생 칼의 존재감이 앞서는데, 그게 신경 쓰일 정도로 정도가 강하다는 사실을 로위는 잘 인식하지 못하는 듯 보인다. 칼이 15년 만에 귀향하자 은둔해 살아가던 로위는 과거 부모의 사망에 얽힌 비밀을 다시 마주할 수밖에 없다. 로위와 칼의 부모는 자동차를 몰고 길을 나섰다가 절벽 아래로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를 당했다. 자살처럼도 보이는 이 사건에 대해 가족을 아는 지역 경찰은 면밀히 조사를 시작하는데, 어쩐 일인지 그도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그런데 칼의 귀환과 더불어 과거 사망한 경찰의 아들이 과거의 사건을 다시 파헤진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이 여러 관련자의 시점으로 긴 시간 동안 벌어진 범죄를 따라가는 구성이었다면, 요 네스뵈의 <킹덤>은 현재 시점에서 재구성해가는 과거와 가족의 비밀 이야기다. 내면에 타자만이 자리하고 있다면, 그 삶이 어떤 형태로 왜곡될 것인가. 노르웨이, 작은 마을, 비밀과 거짓말이라는 요소만큼 확실한 범죄물의 재료가 또 있을까. 요 네스뵈 입문작으로도 좋겠다.
가족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동생을 배신한 탓에, 나는 죽을 때까지 갚아야 하는 빚이 생겼다. 이번에 또 빚을 갚을 때가 왔을 뿐이다.(1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