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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
김송희(자유기고가) 사진 오계옥 2021-11-16

필리프 들레름 지음 / 고봉만 옮김 / 문학과지성사 펴냄

맙소사, “이거 <첫 맥주 한 모금>이랑 비슷하네?”라고 생각하며 읽었는데, 18페이지에 두둥! 하고 그 글이 나와버렸다. 1999년에 한국에서 출간된 후 절판되어 나 역시 몇년 전 도서관에서 겨우 빌려 읽었던 바로 그 책! 중고 서적으로 구매할까 했지만 원래 책 가격의 열배나 비싸게 팔고 있기에 포기했던 바로 그 책이었다. 쓰다 보니 무슨 홈쇼핑 광고 같은데, <첫 맥주 한 모금>은 제목만으로도 궁금해서 헌책방을 뒤지게 만들던 책이었다. 맥주는 첫 모금이 가장 맛있는데, 그걸 아는 프랑스인이라면 그 에세이는 더 볼 필요도 없이 재밌지 않겠는가. 게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확행’류의 수필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어머, 이건 꼭 사야!’ 하는 책인 것이다. 재출간되면서 책 제목은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으로 바뀌었다. 맥주에서 크루아상으로, 주류에서 베이커리로 제목을 바꾸고 표지에는 가을 스웨터와 강아지풀 그림이, 내지에도 소재에 걸맞은 귀여운 삽화가 실렸다. 동화 같은 제목과 표지 때문인지 과거 읽었을 때와 책의 인상이 달라져 글 몇편을 읽으면서도 바로 그 ‘맥주’ 책인지 몰라본 것이다.

<첫 맥주 한 모금>이 스포츠와 음주를 즐기는 한가로운 프랑스 남성의 수필로 읽혔다면 이번에 새 책으로 다시 읽으니 조금 다르게 읽힌다. 일상 구석구석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프랑스 문학가의 몽글몽글한 글(크루아상 그림 때문인가?). 갑작스러운 이웃의 초대와 소매에 묻은 과자 부스러기까지 애정하는 이에게 인생은 경탄의 연속이다. 문밖을 나서면 불쾌한 일부터 대면하기 쉬운 세상에서 그처럼 매일 소박한 즐거움을 채집해 자기만의 언어로 묘사하기 위해서는 감성을 무뎌지지 않게 하기 위한 노력이 수반된다. 늦가을 바람의 색이 바뀐 것을 감지하기, 코가 큰 헐렁한 스웨터를 준비해두고 계절과 한몸이 되어 남은 겨울을 기다리는 일. 이른 새벽 빵집의 따뜻한 불빛 아래에서 크루아상을 사들고 황금빛의 아침을 가로지르는 하루의 시작. 그 소박한 일상을 느리게 사랑하는 일은 당연히 거저 이뤄지지 않는다. 작가가 ‘가장 사랑하는 순간들’을 채집한 34편의 에세이는 97년 프랑스에서 첫 출간되었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책이 풍성하고 달콤하게 읽히는 이유는, 여전히 우리에게 소박하지만 착실하게 손에 잡히는 행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첫 맥주 한 모금

그러나 맥주 첫 모금은! 모금이라고? 맥주 첫 모금은 목구멍을 넘어가기 전에 시작된다. 거품이 인 이 황금빛 음료는 입술과 닿을 때 이미 우리에게 기쁨을 선사한다. 거품 덕분에 맥주의 상쾌함은 더 커진다. 그러고는 쓴맛이 걸러진 행복이 천천히 입천장에 와닿는다. 첫 모금은 몹시 길게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순식간에 목구멍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 과정은 우리의 본능적인 탐욕을 채우기 위한 것처럼 그럴듯하게 꾸며져 있다.(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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