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문외한의 입장에서 ‘초현실주의 작가들’을 소개하는 책이란 지식 습득을 위해 공부해야 하는 인문서처럼 느껴지기 쉽다. 재미보다는 소양을 기르기 위해 읽어야 하는 책은 부담이다. 일단 제목만 보면 그런 부류로 오해하기 쉬운 <초현실주의자들의 은밀한 매력>은 한마디로 엄청나게 ‘재미있고 잘 읽힌’다. 분류는 미술비평, 예술이론쪽으로 되어 있지만, 그쪽 방면 책 중 흥미진진한 ‘사랑과 전쟁’ 계열이라고 설명하면 되려나. 동물학자이자 초현실주의 예술가이기도 한 데즈먼드 모리스는 <털 없는 원숭이>로 유명한 저자인데, 예술가들과 개인적인 친분이 깊었던 까닭에 초현실주의 작가 집단 사이에서 있었던 사적인 에피소드를 손에 잡히듯 묘사했다. 누가 누구와 사귀었고, 누가 누구와 크게 다퉜으며, 누구와 바람을 피우다 결혼했는지 등의 사적인 얘기도 소개된다.
저자는 서문에서부터 이 책에서 초현실주의자의 그림이나 조각을 상세하게 논의하거나 분석할 생각이 없음을 밝힌다. “나는 그런 일은 평론가와 미술사가에게 맡기련다. (중략) 이 책에서 나는 초현실주의자인 인물 자체에 초점을 맞추었다. 놀라운 사람들이다. 그들의 성격, 편향, 강점은 무엇이고 약점은 무엇이었을까?” 데즈먼드 모리스는 자기 나름대로 분류한 초현실주의 유형 중에서도 인간적으로 가장 흥미롭다고 판단한 32명의 작가들의 인생사와 꼭 언급해 마땅한 작품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뒷이야기를 전한다. 저자 본인부터도 전시회에서 “그림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느냐”라는 질문을 피해왔다고 한다. 사물이나 사건을 작가가 무의식에서 끌어올린 이미지를 바탕으로 비틀어 표현하는 초현실주의는 환상미술, 기이한 이야기에 가깝기에 말로 구상 과정을 설명하는 게 무의미하다.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대담한 괴짜였을까? 호색한 혹은 소심한 은둔자였을까? 작가의 사적인 삶이 그의 작품 이미지에 꼭 투영된다고 볼 순 없지만, 삽입된 그림과 함께 인생사를 연결해보면 유명했던 작품도 새삼 달리 보인다. 특히 프랜시스 베이컨의 성적인 활동과 어두운 그림은 그의 성장 배경과 떼려야 뗄 수 없어 보인다. 모든 관습과 권위는 물론 자기 작품까지 경멸해 초기작 700여개를 파괴했던 괴짜 베이컨의 화랑은 가끔 작업실을 급습해 그림들을 안전한 곳에 대피시켰다고 한다. 아거, 베이컨, 브르통과 마그리트 챕터는 모더니즘을 몰라도 충격적으로 재미있고 유익하다.
재미있고 유익한
어머니는 에일린의 스물한 번째 생일을 축하하려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 600명을 초대해서 밤새 춤을 추는 화려한 무도회도 계획했다. 런던으로 돌아온 뒤에야 그녀는 마침내 슬레이드 미술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매일 집안의 롤스로이스를 타고서 등하교를 해야 한다는 조건이 달려 있었다. 난처한 상황을 피하고자, 그녀는 길 모퉁이에서 내리고 타기로 운전사와 계획을 짰다.(3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