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다이어트를 한 것 같다. 2차 성징기를 맞이해 몸의 변화가 낯설었고, 길에서 만난 모든 시선이 내 몸을 향하는 것 같았다. 만화책 주인공의 납작한 가슴이 부러워 압박붕대를 칭칭 동여매고 학교에 간 적도 있다. 체육 시간 한 친구가 큰 소리로 가슴 크기를 지적했던 날엔 데스노트에 그 친구를 저주하는 일기를 썼다. 이게 사춘기 시절의 기억으로 끝나면 좋겠지만, 여성의 몸에 대한 감시는 평생에 걸쳐 이뤄진다.
다이애나 클라크의 <마른 여자들>은 10대 여성들이 미디어와 또래 집단의 영향 속에서 섭식장애에 빠져드는 과정, 어른이 되어서도 마른 몸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사정을 1인칭 시점으로 적나라하게 그린 소설이다. 시설에서 거식증 치료 중인 로즈와 주변 여성들, 반대로 폭식증과 데이트폭력에 노출된 로즈의 쌍둥이 언니 릴리가 파괴되고 회복되는 과정은 일기장처럼 서술된다. 쌍둥이 자매의 체중은 14살 때부터 기록된다. 14살, 나란히 45kg였던 둘의 몸무게는 섭식장애로 차츰 간격이 벌어지더니 21살 때 로즈 30kg, 릴리 100kg을 기록한다. 처음에는 잡지에 소개된 셀럽 다이어트를 친구들과 가볍게 따라하는 데서 시작되지만, 이내 ‘예뻐졌다’는 칭찬에 중독된 로즈는 자기 몸을 통제하며 목으로 무엇도 넘기지 못하게 된다.
‘그대로의 내 몸을 사랑하자’고, 말은 참 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미디어에 노출돼 영향을 받는 대다수 여성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을 박탈당하거나, 혹은 주입된 정상성을 자기 결정이라 착각한 채 산다. 21세기의 미디어는 ‘마른 게 아름답다’고 대놓고 말하지는 않는다. 대신 날씬한 것이 곧 건강함이고 자기를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교묘히 포장한다. 이 소설에서는 ‘유어웨이’라는 단체가 건강 마케팅으로 다이어트 식품을 판매한다.
한국 예능에서는 먹방과 운동을 번갈아 하는 연예인의 일상이 매일 방송된다. 먹고, 빼고, 먹고 빼고, 거대한 다이어트 산업 속에서 여자아이들은 공격당하고 세뇌된다. 지금의 너는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아, 너의 외로움은 외모 탓이야, 너의 쇄골과 허리와 팔뚝을 봐, 그 늘어진 살들은 정말 추해. 10대들이 ‘프로아나’라는 아사 직전의 기록을 공유하는 괴이한 현실에서 <마른 여자들>은 소설이라기보다는 르포다.
욕망하는 결핍
인간은 대부분의 것들을 과도하게 욕망한다. 우리는 소비하는 생물이자 자본주의의 산물이지만, 몸무게는 우리가 결핍을 선호하는 항목이다.(14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