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디>는 매일 신문지면에 연재되는 만화다. 동일한 크기가 주어지고, 작가에 의해 칸이 구획되는 한바닥 만화로 일상에서 낚아낸 작은 에피소드들이 주종을 이룬다. 한바닥 만화는 보통 3칸이나 4칸만화인 신문 연속만화(comic strips)와 달리 작가에 의해 칸의 구분이 능동적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나라에 근대신문이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된 만평과도 다르다. DJ정권 이후 중앙일간지의 시사만화, 시사만평들은 ‘시사’나 ‘만평’을 모두 포기하고 정치적 프로파간다가 되어버렸다. 자기 매체의 정치적 노선을 드러내고, 상대방을 폭로하고 공격하는 데 주력하는 시사만화와 달리 한바닥 만화들은 독자들의 정서와 파장을 맞추는 데 주력한다. 그러다보니 많은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크게 두 가닥으로 진행되는데, 감동과 웃음의 축을 따른다. 어느 한쪽에 주력하는 만화도 있지만 역시 매력적인 것은 이 둘이 행복하게 만나는 작품을 보는 일이다. 30대 독자들과 공감대를 이루며 감동과 웃음을 선사하는 대표적인 한바닥 만화는 <한겨레>에 연재되는 홍승우의 <비빔툰>과 <일간 스포츠>에 연재되는 정연식의 <또디>를 꼽을 수 있다. 이 두 작품들은 명백하게 30대적 정서에 기반한다.
입꼬리를 올리는 작은 웃음의 향연
나는 신문이나 인터넷을 통해 빠지지 않고 <또디>를 보는 편인데, 볼 때마다 웃는 만화가 있다. 이번 작품집 68쪽에 소개된 에피소드다. 조그마한 전동 안마기 판매원은 평범한 안마기가 아니라 “낮엔 그저 보통 진동기지만 밤엔 권태기 부부에게 활력을 주는, 특히 부인께 잊지 못할 즐거움을 주는” 기계라고 말한다. 무명만화가 이팔육은 비싼 안마기를 구매하고 이불을 펴고 설명서를 따른다. 진동기를 쥐고 아내와 마주보는 자세를 취한 뒤, 진동기를 턱밑에 갖다대고, 스위치를 켜자 이팔육의 얼굴은 덩달아 진동해버리고, 이 모습을 본 아내는 커다랗게 웃어댄다. 고백하자면 어머니의 진동 안마기를 얼굴에 대본 적이 있었고, 그 격심한 떨림에 당혹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이 에피소드가 정연식의 경험에서 검증된 것이라고 믿는다. <또디>의 많은 에피소드, 그중에서도 어처구니없는 몇몇 에피소드들은 작가의 살신성인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남들이 보면 이해 못할 행위이지만, 천성적으로 궁금함이 많은 사람들은 금기의 유혹에 손을 내밀게 마련이다. 이를테면 너무나 맛있게 보이는 개밥을 먹어보는 따위의 일이다.
<또디>는 명랑만화다. 50∼60년대 우리나라의 여러 잡지에는 많은 명랑만화들이 연재되었다. <아리랑> <야담> <사건과 실화>와 같은 잡지에 연재되는 만화는 대부분 4칸만화나 1∼2쪽의 명랑만화였다. 명랑만화는 아동용 잡지와 소년신문에 연재되며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70년대 들어 주류장르로 자리잡았다. 30대의 기억에 남아 있는 70년대 만화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명랑만화들이다. 길창덕, 윤승운, 신문수, 박수동, 이정문, 윤준환, 오원식, 허어, 김삼, 김박 등 수많은 작가들이 명랑만화를 화려하게 꽃피웠다. 그러나 명랑만화는 80년대 김수정과 김진태 이후 더이상 새로운 작가를 탄생시키지 못하고 삭막한 사막이 되어갔다. 90년대, 그 사막한 터전에 홍승우와 정연식 같은 작가들이 탄생해 명랑만화의 맥을 이었다. 명랑만화는 개그만화가 아니라 일상의 만화다. 뒤집어지는 거대한 웃음이 아니라 부담없이 입꼬리를 올리는 작은 웃음의 향연이다. 만화에 그려진 캐릭터의 일상은 나의 일상과 만나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상은 마술처럼 우리를 사로잡는다. 정연식 만화는 화려한 디지털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낡은 악극단이나 서커스처럼 따뜻한 마음을 내비치며 매일매일 똑같은 지면을 지킨다.
넓어지는 만화의 지평
천진한과 영희, 이팔육과 백숙, 천진표와 세유, 정육점과 막나가파 등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의 특징을 익혀야 하는 복잡한 설정은 없다. 너무나 뻔한 주인공들이기 때문이다. <한겨레> 인터뷰에서 작가는 “내 만화가 ‘소박한 일상, 자잘한 이야기’라고 표현되는 것이 정말 이상하다”고 말했다. 작가는 기발한 발상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이 자질구레한 얘기지만 재미있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심하시라. 순간적으로 휘발되는 자질구레한 일상의 사건을 잡아내는 일은 깊은 사색과 관찰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기발한 발상’과 똑같은 것이니까. 일상을 관찰하고, 쪼개서, 한바닥 만화에 담아내며, 그 안에서 웃음과 감동을 주는 일은 천재적인 만화가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단행본 마지막 만화로 수록된 ‘이팔육네 가족사진’이라는 작품을 본 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오늘이 내일은 지나간 추억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디>를 보며 느낀 가장 큰 웃음과 가장 큰 감동이다. 당신은 어떤 웃음과 감동을 경험했는가! 박인하/ 만화평론가 enterani@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