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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치 미쓰루의 <미유키> <일곱빛깔 무지개>
2002-04-25

변하지 않는 로맨스 만담이여!

한때 우리 만화시장이 해적판이라는 적조로 뒤덮여 있던 때가 있었다. 단순한 저작권의 문제가 아니라 무책임한 번역, 제멋대로 권 수 나누기, 여러 만화가의 작품 뒤섞기 등 눈뜨고 볼 수 없는 횡포들이 뒤엉켜 있었다. 그러나 그 검붉은 바다 속에서도 반짝이는 진주를 찾아내던 만화 독자들의 노력은 가상했다. 만화가의 이름도 나오지 않고 원제와는 아무 상관없는 엉터리 제목을 단 작품들을 어떻게 엮어내며 이름 모를 누군가의 팬이 되었고, 출판사에 그 만화가의 책을 펴내도록 무언의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을 거쳐 우리 독자들로부터 최초로 작가적 아이덴티티를 얻게 된 일본 만화가는 아마도 아다치 미쓰루일 것이다. 정말로 웬만한 그의 만화들은 한두번씩 해적판으로 얼굴을 내밀었고, 많게는 서너개의 다른 제목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 아다치의 옛 만화들이 정식으로 우리 앞에 다시 선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의 만화 <미유키>, 그리고 10년 전의 만화 <일곱빛깔 무지개>다.

두 작품, 정식판으로 돌아오다

1980년에 시작된 <미유키>는 70년대에 소년소녀 만화계를 오고가며 그저 그런 경력을 쌓아가던 아다치가 본격적인 인기몰이와 더불어 분명한 자기 색깔을 가지게 되는 전환점의 작품이다. 아다치는 오랜 만화 생활 동안 거의 그림체나 연출의 방법이 바뀌지 않는 만화가로 유명한데, 그래도 옛날의 더 촌스런 그림체가 있었다는 것을 이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듬해에 나온 <터치>에서부터 현재와 거의 유사한 그림체가 고정되기 때문에, 아다치 초기의 그림 선을 볼 수 있는 마지막 작품이라고 할 수도 있다.

평범한 한 소년이 외국에서 돌아온 여동생 미유키와 단 둘이 살아가면서 동급생인 또 다른 미유키와 사랑을 시작한다. 우여곡절 끝에 둘의 연애는 무르익어가지만 소년은 여동생 미유키와의 야릇한 감정에 괴로워하고, 그녀와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다는 비밀이 그를 괴롭힌다. 매우 전형적인 아다치표 만화의 설정이고, 같은 시기에 동거 로맨스코미디의 열풍을 함께 불러일으킨 다카하시 류미코의 <메종일각>, 가와하라 유미코의 <전략, 밀크하우스> 등과도 유사한 점이 많다. 하지만 두 여성 만화가의 작품이 우당탕거리는 소동과 개그 묘사라는 소년만화의 전통에 다가갔다면, 아다치의 이 소년만화는 섬세한 사랑의 저울질이라는 소녀만화의 감성에 훨씬 가까워 보인다. 물론 빈번한 벗기기와 눈요기는 소년 독자들을 위한 팬 서비스라지만, 일기체와 독백체의 화법과 잘게 나뉘어진 칸을 통해 감정의 단락을 표현하는 연출법은 소녀만화적 취향을 다분히 반영하고 있다. 이후의 <쇼트 프로그램> <진베> 등으로 이어지는 로맨스만화는 물론, <터치> <H2> 등의 스포츠만화에서도 빠지지 않는 아다치의 절묘한 삼각연애 줄타기의 원형을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시 10년이 지나 1990년에 시작된 <일곱빛깔 무지개(虹色とうがらし)>는 별로 다채롭지 않은 아다치만화 역사에서 다소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작품이다. 시대극을 그리려다가 고증의 문제 등이 걸리자 은근슬쩍 시공불명(時空不明)의 개그물로 바꾸어버린 듯한 느낌인데, 다양한 능력의 주인공들이 황당무계한 소동을 벌이는 팀 코미디라는 점에서 본다면 최근작인 <미소라>가 그 계보를 잇는다고도 보인다. 하지만 <미소라>가 이것저것 섞으려다가 제대로 수습 못한 ‘2001년의 실망작’이라면, <일곱빛깔 무지개>는 그 아기자기한 맛으로 인해 아다치표 개그만화의 진국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20년 전부터 확고한 ‘아다치 세계’

일본 중세를 배경으로 하는 게 분명하지만, ‘이건 미래의 이야기야’라고 극구 우기는 어느 곳의 어느 때. 어머니가 죽으면서 건네준 호두를 들고 친부를 찾아간 소년 시치미는, 카라쿠리 연립이라는 곳에 아버지의 배다른 형제 다섯과 누이 하나가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신기한 것을 좋아하고 바람기가 농후한 이곳 막부의 쇼군이 서로 다른 여자들과 사랑해서 낳은 아이들인 것이다. 위로는 만담가인 장남 고마, 검의 달인인 차남 아사지로, 조폭 같은 승려인 삼남 케시노보, 아래로는 집안 살림을 도맡아하는 장녀 나타네, 발명가인 오남 친피, 아기 닌자인 육남 산쇼, 그 가운데 사남인 시치미가 들어가 더도 덜도 없는 무지개빛 아이들이 만들어졌다.

아다치는 이들 중 어느 하나도 뒤처짐 없이 자기 색깔을 낼 수 있게 훌륭한 성격들을 부여한 뒤에, 사실은 이 아이들 중 하나는 친형제지간이 아닐 것이라는 루머를 퍼뜨린다. 아다치만화의 독자라면 단번에 남매들 사이의 로맨스를 만들어보려는 눈에 보이는 수작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그런데 무언가 빠진 게 없나? 승부와 로맨스는 아다치가 가진 양날의 검. 쇼군의 권좌를 노리는 일파와 서양인의 외모를 하고 나타난 외계인들이 확실한 악역이 되어 이들 일곱 형제들과 화끈한 칼부림을 하고, 그에 못지 않은 썰렁한 농담 대결을 벌인다. 10년 전의 작품을 보나, 20년 전의 작품을 보나 아다치는 정말로 변하지 않는 로맨스 만담가임에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