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위주의 댄스음악만이 TV를 주요 매개로 팔려나가고, 대형도매상이 음반유통의 선진화를 가로막고 있으며, 시장의 대부분을 소수 ‘메이저’ 기획사가 지배하고 있음에도 항상 구조적 불안정성에 시달리는 곳. <글로벌, 로컬, 한국의 음악산업>(신현준 지음/ 한나래 펴냄)이 묘사하는 한국 음악산업의 모습이다. 이 책이 처음한 말한 건 아니다. 한국 음악산업의 기형성과 비건강성은 언론이나 각종 매체를 통해 꾸준히 언급돼왔다. 하지만 현상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정도의 내용만을 담았던 그동안의 문제제기와 달리 <글로벌…>은 전 지구적 네트워크의 일부로서의 한국 음악산업의 실체를 파헤친다.
정치경제학이라는 본체에 문화연구(Cultural Studies)를 통해 빚어낸 다양한 이론이라는 도구를 끼워가며 한국의 음악산업을 세세하게 분해하려는 이 책은 한국의 음악산업을 분석하기 위해 ‘지구화/국지화’ 또는 ‘글로벌/로컬’이라는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이제 공고해지는 듯한 ‘세계화’ 체제 속에서 한 나라의 음악산업만을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으며, ‘자국문화=진정한 것/외래문화=종속 또는 수입’으로 간주하는 문화제국주의론도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 음악산업 또한 “지구적 네트워크 속에서 로컬하게 구성된 산업”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한국 음악산업을 주된 과녁으로 삼은 이 책이 현재 ‘지구적 네트워크’의 주요 변수인 서구의 음악산업으로부터 출발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저자가 설명하는 미국과 영국 등의 음악산업의 전개는 매우 흥미롭다. 특히 55년을 기점으로 로큰롤이 대중음악을 지배하게 된 사정은 음악 내적인 혁신이나 대중 취향의 변화보다는 저작권을 둘러싼 분쟁, 음반의 회전수를 규정하는 특허법 제정, 방송면허의 완화 등 경제적 토대와 법적 장치의 변화에서 구해진다. 전 지구적 음악산업이 현재의 구도를 갖추게 되는 것은 80년대 구조적 위기를 맞은 서구 음악산업이 국가의 경계를 넘은 합병과 팽창을 거치면서. 이로 인해 90년대에 이르면 세계 대중음악의 70%는 5∼6개의 메이저 업체에 장악된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의 경우 이처럼 강고해진 ‘세계 음악산업의 독점화’와는 정반대의 길로 가는 듯 보인다는 것. 음악산업의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날개를 펼치기 시작한 90년대 들어서면서 한국 음반시장에서 가요의 비중은 오히려 압도적으로 상승해 현재까지도 70%대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이같은 변화 또한 전 지구적 시스템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 이전까지 전속계약, PD메이커, 기획사 시스템으로 변모해왔던 한국의 음악생산 시스템은 90년대 들어 큰 변화를 맞는다. 이른바 메이저 기획사가 만들어낸 가창력보다 외모를 내세우는 아이돌 스타가 대중음악계를 지배하는 등의 현상은 한국 음악산업이 이같은 세계적 차원의 변화에 맞대응할 뿐 아니라 동화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즉 “전 지구화 과정의 핵심적 구성요소인 음악의 디지털화 및 시각화의 전개 속에서 성장한 수용자들(이른바 ‘영상세대’)의 감성”에 부합하는 것이 이같은 음악장르였다는 얘기. 저자는 이같은 한국 음악산업의 불균형 성장에 대한 대안으로 음반유통의 현대화, 아티스트와 장르의 개발, 국제적 시민연대 활동 등을 제시한다.
‘대학교 시간강사’이자 ‘기술문명 비평가’와 ‘영화음악 에세이스트’이며 ‘정치비난가’라고 스스로 주장하는 신현준에게 경제학 박사라는 또 다른 직함을 안겨준 이 책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박사학위 논문이기도 하다.
문석 ssoon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