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트족에 처음 관심을 가진 것은, ‘드루이드’ 때문이었다. 언젠가, 영국 남부지역의 갖가지 거석 건조물이 드루이드의 종교의식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가설을 봤을 때였다. 켈트족의 사제인 ‘드루이드’. 그뿐이었다. 켈트족에 대한 책은 거의 없었고, 유럽의 역사나 고대 문명을 이야기할 때 조금씩 곁가지로 다루어지는 정도였다. 이번에 나온 <켈트>(줄리에트 우드 지음/ 들녘 펴냄)가 유난히 반가운 이유는 그것이다. 그동안 조각조각 알아온 ‘켈트’에 잘못된 상식과 오류가 많았음을, 이 책을 읽으면서 실감했다. 일례로 나는 켈트족이 영국과 유럽 일부 지역에만 존재한 소수 민족으로 알았다. 그러나 켈트족은 고대에 지중해와 북유럽을 제외한 유럽 전역을 지배했다. 기원전 3세기 무렵부터 쇠퇴하기 시작한 켈트족은, 기원전 500년경 유럽 대륙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고 아일랜드에서 황금시대를 누렸다. 자연 특히 숲을 숭배해온 켈트족의 사원은 숲 속의 공터였고, 그들은 이집트나 마야처럼 거대한 석조 기념물을 남기지 않았다. 다민족 집합체였던 켈트족은 유럽 대륙에서 조용히, 숲의 정령이 고요히 물러나듯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이번에 함께 나온 <켈트>, <마야>(티머시 로턴 지음), <티베트>(마이클 윌리스 지음)는 간혹 이름을 들어보았지만 제대로 알지 못했던 문명에 대한 유용한 입문서다. 서구에서는 그들의 뿌리인 그리스, 로마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자는 움직임이 꽤 전부터 있어왔다. 약간 폭을 좁히면 ‘뉴에이지’가 되는데, 이성과 합리성을 기반으로 세워진 서구문명을 반성하고 인간의 영적인 내면을 중시하는 경향이다. 자연스레 과거나 현재의 ‘다른’ 문명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켈트> <마야> <티베트>는 이런 흐름에서 나오게 된 책이다.
의도가 어쨌건 이 책들은 정말로 훌륭하다. ‘삶, 신화 그리고 예술’이라는 부제로 세 민족의 과거와 찬란한 문명의 흔적을 알기 쉽게, 일목요연하게 담아냈다. 특히 비주얼이 일품이다. <켈트>에서 숲의 풍경을 담아놓은 사진이나, <마야>에서 죽은 자들의 도시 티칼의 전경 사진을 보면 그 고혹적인 자태와 장엄함에 숨이 멈춰버릴 지경이다. 사진과 함께 차분하게 설명되는 변방의 세 민족의 역사와 문명은 흥미롭고, 또 유려하다. 자연세계의 상징을 통해 예언과 마술, 변신에 대한 믿음을 가졌던 켈트족. 신을 달래고, 우주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인간을 제물로 바쳤던 마야인. 사악한 신들을 없애기보다는 달래서 오히려 불법을 수호하는 ‘다르마 팔라’로 만들었던 티베트인.
켈트, 마야, 티베트의 삶과 신화를 보다보면, 혹시 우리가 너무나 좁은 세계에 갇혀 지내는 것이 아닐까, 란 생각이 절로 든다. 최근 나온 <요정과 전설의 섬 브리튼으로의 여행>(모리타 지미 지음)은 스코틀랜드, 웨일스, 잉글랜드 등 영국 곳곳을 여행하면서 각 지방에서 전해지는 신비롭고 기이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갖가지 요정과 괴물들,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아서왕과 마법사 멀린에 얽힌 전승들, 에이브베리 지방에 놓인 거대한 환상열석과 인공언덕 등의 다채로운 이야기가 기행문처럼 담겨져 있다. 우리의 현실적 삶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전설과 신화’지만, 기묘한 이야기를 읽는 재미만은 다르지 않다. 특히 판타지에 관심이 있다면, <요정과 전설의 섬 브리튼으로의 여행>은 더욱 즐거운 책이다.
요즘 그리스, 로마 신화 읽기가 유행이다. 아이들은 디지몬 캐릭터의 이름을 외우는 것처럼, 신화 속의 신과 영웅들의 계보도를 외운다고 한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기왕이면 더 나아가 루고스와 케르눈노스, 우나프와 스발렌케 그리고 마하 칼라와 펜덴 라모 같은 이름들까지 알게 된다면 더욱 좋지 않을까. 김봉석/ 문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