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도, 소설도 있지만 주로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는 심산(주요작은 <비트>와 <태양은 없다>)의 본명은 심종철이다. 그와 나는 80년대 민주화운동 혹은 문화운동의 일각을 함께 지킨 ‘형-아우’ 사이였다. 그가 <심산의 마운틴 오딧세이>라는 자신의 저서를 보내면서 이렇게 썼다. 김정환 兄께-“兄이 山에는 안 간다는 거 알지만” … 나는 피식 웃으며 속으로 이렇게 답했다. 아우가 나를 잘 안다는 거 알지만….
어쨌거나 내가 산에 안 가는 거는 사실이다. 징역 2년 살고 몸무게 50kg 미만으로 입대, 통신병으로 양구 민통선 북방의 산들을 ‘작전’ 다니며 나는 다섯번 이상을 졸도했었다.
심산이 산을 좋아하는 걸 알기 전에도 그는 산같이 듬직했다. 하체에 비해 상체가 상체에 비해 머리통이 큰 그가 록바에서 춤이라도 추면 그건 산과 동지적 연대감의 합(合)이 덩실대는 모습 같았다. 다시 어쨌거나, 이름을 ‘종철’에서 ‘산’으로 고친 것은 산에 미치고부터인 듯한데 그런 생각을 하니 단박에 ‘심산’이 ‘마음 산’ 혹은 ‘깊은 산’으로 느껴진다.
위 책은 산에 미치는 틈틈이 산에 관한 책에 미치는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국내외의 저명한 산악문학을 ‘등반’하면서 그 ‘미침’은 삶의 의미를 낳고 의미가 의미인 채로 아름다움=죽음에 가닿는다. 그가 소개하는 책의 내용은 물론 흥미진진하지만 정작 소중한 것은 그 대목이다. 내지 장정은 흠잡을 데 없지만 표지는 들인 돈에 비해 오히려 ‘값싸’보이는데, 캐치프레이즈는 정말 책의 내용에 걸맞다. 산이 만든 책, 책 속에 펼쳐진 산… 여기서 산이 그냥 ‘산’인지 아니면 심‘산’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문장에서 그의 땀내가 묻어난다.
그 땀내는 등산이 삶을 능가하는 땀내고 독서가 문학을 능가하는 땀내며, 마침내 등산이 등산을 문학이 문학을 능가하는 땀내다. 또 하나. 그의 산행은 초월과 게릴라행을 중첩시킨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지리산 빨치산 얘기가 산행의 한 장면으로 편입될 때 그 역사적 의미가 훨씬 더 명징해진다는, 비극이 더 슬퍼진다는 사실에 나는 기분좋게 놀랐다.
그런데, 산아. 내가 산을 미워하지는 않는단다. 동계훈련 비상이 걸려 빠른 속도로 산을 몇개 넘다가 기절을 연거푸 세번한 덕에 훈련기간 내내 잠자다가 겨우 정신을 차려보니 산 아래 개울못에 단풍물이 고였고, 가을인데, 웬 붉고 고운 눈동자가 말하더라. 세상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 그때, 나도, 삶의, 의미가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비로소 살고 싶어졌다(풀빛 펴냄). 김정환/ 시인·소설가 maydapoe@thrun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