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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즈 일레븐> O.S.T.
2002-04-04

스타일, 좀 사나?

스티븐 소더버그의 신작 <오션즈 일레븐>은 한껏 멋을 부린 스타일의 범죄영화다. 이런 영화의 내용은 더이상 삶의 반영이 아니라 스타일 자체의 반영이다. 범죄영화의 공식을 얼마나 더 멋지게 가지고 노느냐가 관건이다. 스티븐 소더버그는 자유자재로 그 공식들을 넘나들면서 자기만의 공간을 리믹스하고 있다. 그 리믹스된 공간에서는 과거의 것들이 스티븐 소더버그와 조금은 퇴행적인 방식으로 대화하고 있는데, 그것들이 복고적이면서도 신선한 맛을 발휘하도록 하는 작은 터치들이 이 영화를 매력적으로 만든다.

1960년대나 1970년대의 B급 범죄영화를 규정하는 음악은 주로 흑인들에게서 나온다. 대표적인 예가 영화 <슈퍼플라이>나 <쿵후 파이팅>을 만든 커티스 메이필드나 전설적인 <샤프트>의 아이작 헤이즈이다. 어딘지 도시 뒷골목 냄새가 나는 이 음악들의 독특한 리듬감은 많은 B급 범죄영화들에 의해 참고되고 있다. 영화나 TV시리즈의 인트로 화면(주인공인 형사들이 범죄자들을 타격하는 장면 같은 것들)과 주로 잘 붙는 이 남자다우면서도 냉소적인 느낌의 리듬 앤 블루스는 1970년대 이후 범죄영화에 쓰이는 음악의 한 전형을 이루고 있는데, 스티븐 소더버그는 영화음악가이자 테크노 뮤지션이기도 한 데이비드 홈즈를 시켜 바로 그 전형을 현대적으로 옮겨오도록 하고 있다. 이때 1970년대의 펑키한 음악이 갖고 있는 복고적인 느낌을 차용하면서도 거기에 신선한 느낌을 부여해주는 터치로 작용하는 것은 이른바 ‘애시드 재즈’이다.

데이비드 홈즈는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에서 태어난 일렉트로니카 뮤지션이다. 그가 이번 영화에서 구사한 음악은 1990년대 초반 샤도우 레이블을 통해 발매되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1970년대의 B급 애시드 하우스 펑크로부터 길어낸 ‘거친 맛’을 힙합의 현대적인 그것과 결합시킨 스타일과 상통한다. 주로 흑인 뮤지션들에 의해 많이 만들어졌던 이 계통의 애시드 재즈를 북아일랜드 출신의 데이비드 홈즈가 어떻게 흉내낼 수 있었을까. 북아일랜드의 로큰롤 수용사는 조금 독특하다. 밴 모리슨의 영감적인 보컬로 상징되는, 이른바 ‘노던 솔’(northern soul)의 전통이 요새까지도 굳건히 살아 있다는 걸 감안하면 데이비드 홈즈의 흑인적인 리듬감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야 달려라, 나는 나대로 달리마, 하는 식으로 이어지는 이 그루브감 넘치는 애시드 재즈는 꽤 들을 만하다. 복고적인 느낌들과 현대적인 어떤 것을 결합하고자 하는 소더버그의 공식들에 잘 맞아떨어지는 스타일이다.

영화 OST에는 데이비드 홈즈의 음악 이외에도 이 영화의 배경인 ‘라스베이거스’를 상징하는 스탠다드 팝들이 여럿 들어 있다. 라스베이거스의 속물적인 호텔 라운지 분위기를 상징하는 퍼시 페이스와 그 오케스트라의 이지 리스닝, 화려하다 못해 역겹기까지 한 라스베이거스의 디너쇼에 나올 법한 페리 코모, 고전적인 듀크 엘링턴, 그저 돈밖에 모르는 촌뜨기들이 일확천금을 꿈꾸며 달려드는 이 ‘투견장’의 거친 느낌을 살려주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 등이 OST에 실려 있다. 데이비드 홈즈의 새로 쓴 스코어와 이 선곡된 노래들이 영화의 분위기를 비교적 잘 반영해준다. 성기완/ 대중음악 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