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애니메이션이 해외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본선에 연이어 진출하고 있다. <마리이야기>가 안시페스티벌 경쟁부문에 오른 것에 이어 김진영의 <초지>, 정진희의 <冬>, 조상석의 <수냐>가 자그레브페스티벌 경쟁부문에 진출했다는 소식이다. 작가 김진영은 단편 <자리 만들기>로 2000년 안시페스티벌 학생부문 본선에 오른 바 있다.
<초지>는 셀과 종이 위에 아교 잉크와 아크릴릭으로 수묵담채화의 효과를 낸 7분가량의 단편이다. 생경한 제목은 ‘아무도 밟지 않은 맨땅에 새롭게 솟아나는 잔디’라는 의미로,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다. 주인공이 겪는 내면의 혼란을 그리는 만큼, 명쾌한 전개를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난해하게 다가올 수 있는 작품이다.
먼저, 거친 붓선으로 강조된 산이 보이고 그 산을 가리키고 있는 하얀 손가락이 보인다. 그런데 섬뜩해라. 카메라가 전체를 비추고 보니 주인공은 소복 입고 머리 풀어헤친 여인이 아닌가. 게다가 배경음악은 괴기스러운 기계음과 현악기 소리. 바람 부는 정체불명의 공간에 서 있는 여인을 보고 있자니 구천을 떠도는 넋이 바로 이 모양이 아닐까 싶다. 한국인의 원초적인 두려움을 자극하는 소복 입은 여인의 충격에서 벗어나면, 이 여인, 그러니까 초지가 계속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게 보인다. 자세히 보니 손가락으로 허공에 산의 형상을 그리고 있다. 이윽고 버선발로 홀연히 집으로 들어가서는 손바닥에, 종이에 산의 형상을 그리기 시작한다. 기백 있는 붓 놀림.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열정은 더해져서, 강렬하고 폭발적인 기운으로 그리는 행위에 몰두한다. 혼신을 다해 세상을 향한 몸짓을 하는 무용가처럼, 초지의 의식은 두팔로, 온몸으로 산의 형상을 표현해낸다.
산줄기는 범이 되고, 학이 되고, 사슴이 되더니, 다시 구렁이가 되고, 말이 되고, 용이 된다. 그뿐인가. 범이 사슴을 덮치고 구렁이는 범을 쫓는다. 말과 용이 뒤엉키나 했더니 범과 용이 싸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구렁이로 변한 산줄기가 창조주조차 집어삼키려 드는 것이 아닌가. 자신을 둘둘 감아대는 구렁이를 피해 밖으로 뛰쳐나가는 초지. 슬럼프일까. 매너리즘일까. 절망한 그녀는 벼랑 위에서 몸을 날리고, 그토록 신명나게 산등성이를 그려대던 붉은 정열은 핏빛으로 치환된다.
숨가쁜 전개.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상상이었을까. 어느새 초지는 현실로 돌아와 있다. 무언가 달라진 모습. 슬럼프를 극복하고 다시 산과 마주했다. 기쁘다!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산등성이와 대지,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을 하늘까지, 모든 것이 이토록 새롭지 않은가.
초지는 작가의 고뇌를 대변하고 있다. 고뇌와 상상의 끝에 태어나지만 창조물은 필연적으로 작가의 손을 떠난다. 김진영은 “상상이 의식의 통제에서 벗어나고, 그 에너지가 다른 대상의 본질을 깨워내는 모습을 구체적인 영상으로 담아내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야기의 흐름 자체가 제작과정과 일치했다고 하니, 2001년 이 작품을 제작하는 동안 작가가 겪었을 고뇌와 좌절, 환희가 그대로 보이는 듯하다.
<초지>는 카메라 앵글의 변화로 상상과 현실, 그리고 공간의 변화를 무척 자연스럽게 이끌었다. 컷의 변화 없이도 이곳 저곳 자유자재로 관객을 안내하는 연출이 놀랍다. 존재감 없는 하얀색 배경과 재료의 성질을 그대로 보여주는 수작업의 성과도 돋보인다. 그러나 어쩌랴. 낙서하다가 우연히 나왔다는 초지의 이미지는,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여전히 ‘처녀 귀신’처럼 보인다. 작가의 상상력은, 어느덧 제멋대로 구렁이와 범처럼 뒤엉켜서 관객의 손에 떨어진 것이다. 김일림/ 월간 <뉴타입> 기자 illim@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