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ribute to 들국화`/ 유니버설 뮤직 발매

그들이 또 돌아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의 음악이 돌아왔다. 십 몇년 전의 신화로 묻히는가 했다가 98년에 재결성을 발표하고,

신보 대신 틈틈이 콘서트로 소식을 알려왔던 들국화. 걸출한 가창력, 희로애락의 다면체 같은 삶을 담은 가사와 안정된 연주력으로 포크와 록,

블루스를 넘나들며 80년대 중후반 지하 소극장에서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곤 했던 들국화의 음악이 이번에는 헌정의 대상으로 돌아왔다. 강산에,

동물원, 신해철, 윤도현밴드, 이승환, 크라잉넛 등 14개팀이 록부터 발라드, 포크, 재즈까지 개성있는 변주로 ‘들국화 다시 부르기’를

들려주는 `a Tribute to 들국화`가 최근 발매된 것이다.

<…들국화>의 수록곡들은 들국화 1, 2집, 보컬인 전인권과 키보드주자 고 허성욱이 함께한 <머리에 꽃을>, 베이스 겸 보컬 최성원의 독집

등에서 골라 변주한 곡들. 이미 인정받아온 타인의 음악을 다시 부를 경우, 그 분위기를 잘 살리거나 아예 다른 곡처럼 자기 개성대로 불러버리는

게 듣는 이의 귀에 들어오게 마련이다. 우선 델리 스파이스의 <내가 찾는 아이>, 동물원의 <제주도의 푸른 밤> 등은 밴드의 색깔에 어울리는

곡을 고르고, 원곡의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되살려낸 경우다. 원곡처럼 멤버들이 돌아가면서 한 소절씩 부른 델리 스파이스의 <내가 찾는 아이>는,

맑은 어쿠스틱 기타에 담백한 음색을 얹어 단아하면서도 평화로운 서정을 잘살렸다. 퍼커션으로 비트를 슬쩍 얹고 함춘호의 블루지한 기타로 변화를

주면서도 원곡의 낭만적인 분위기를 전하는 동물원의 <제주도의 푸른 밤>도 무난한 조합. 능청스럽게 리듬을 밀고 당기며 원곡을 민요 비슷하게

불렀던 전인권을 연상시키는 이적의 노래, 한상원의 펑키한 기타소리가 장난스러운 긱스의 <더이상 이제>도 세련된 편곡이다.

이런 편곡이 들국화의 원곡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향수를 준다면, 신선한 재미를 주는 쪽은 역시 제멋대로의 개성을 잘 녹인 곡들이다. 잘 못하면

원곡보다 못하다는 원망을 듣기 일쑤라 모험수는 크지만. 이번 음반에서 단연 귀에 들어오는 편곡은 인디밴드 크라잉넛과 언니네 이발관의 곡들.

펑크를 기본으로 유랑극단 스타일의 폴카, 재즈까지 오가는 밴드 크라잉넛의 <세계로 가는 기차>는 음산한(?) 재즈 스타일로 바꾼 인트로에서

출발해 발랄한 스카풍으로, 로큰롤 분위기로 종횡무진 경쾌하게 나아간다. 음반 전체에서 비교적 덜 알려졌다 할 수 있는 최성원의 <솔직할

수 있도록>을 고른 언니네 이발관은, 울림이 많고 쟁쟁거리는 밴드 특유의 모던록 기타 사운드와 엷은 미성으로 낯익은 선율을 낯설게 듣는

재미를 준다. 그 밖에 이미 ‘한국 록 다시 부르기’에서 들국화의 노래를 불러왔던 윤도현밴드의 록비트가 강해진 <행진>, 발라드에 능숙한

이승환이 미성뿐 아니라 한때 헤비메탈을 불렀던 전적에서 나오는 샤우팅, 합창까지 동원해 자기색을 덧입힌 <사랑일 뿐이야>, 선이 가는 미성으로

심플한 원곡보다 화사한 화음을 들려주는 박학기, 조규찬의 <매일 그대와>, 그리고 비장한 무게를 덜고 좀더 수월하게 부르면서도 힘을 실은

강산에의 <그것만이 내 세상> 등 참여 뮤지션들의 개성과 들국화의 음악이 무난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단순하면서도 정서가 풍부한

선율, 결코 가볍지 않은 삶의 무게를 담은 시적인 감성의 가사가 귀에 감긴다면, 헌정의 대상인 들국화를 되새겨보라고 하고 싶다. 그래서

참 진지한 미감을 지녀온 들국화가, 현재진행형의 중견밴드로 음악여정을 이어가며 대중음악의 토양을 좀더 풍성하게 가꿔갈 수 있게 말이다.

황혜림 기자 blauex@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