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부리 눈’이 너무도 선량한 조병래(인터넷신문 프레시안 www.pressian.com 사회 에디터)는 만난 지 서너달 만에 ‘술 속으로 급속히’ 친해진 경우다. 이런 경우 친함의 깊이가 뭔가 위태롭고 동시에 걸쭉한 체념의 냄새를 짙게 풍기는 거라서 애매모호-지지부진하기 십상인데 그 짧은 시간에 그가 나를 두번이나 경악-환호케했으니 말년에 이런 ‘친구복’도 드물겠다.
하나는 그의 부인이 20년 전, 내가 신인이었을 때, 너무도 착해보여서 ‘흠모’해마지 않았던 서화숙(한국일보 문화부장)이라는 거. 며칠 전 그 얘기를 너무도 뒤늦게 듣고 나는 감탄 또 찬탄했었다. (뒤늦게나마 결혼 축하) 또 하나는 그가 음악애호의 명인이라는 점이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다시 들을 것 같지 않은’ 클래식 CD를 200장 넘게 회사로 들고나와 사원들에게 골라가라 하였는데 이것은 내가 알기로 음악 애호의 최고 경지다. 가장 육감이 생생한 ‘음악의 기억’을 망각화, ‘기억 총체’를 음악-사회화하는 경지. 더 나아가 무덤을 음악의 집으로 만드는 경지다. 그에게는 마지막 경지가 하나 남았다. KBS 클래식 음악 진행자 김범수의 경지. 하도 듣고나니 이제 명반이란거 별거 아냐. 악보에 맞게 연주만 하면, 그게 그거야…. 그는 내게 그렇게 말했었다.
그냥 음반이 많으면 좋은 줄 알고 허겁지겁 제 곁에 챙겨놓는 나의 ‘과시형’ 애호와는 조병래도 김범수도 처음부터 격이 다르다. 어쨌거나, 하여, 사원들에게 그중 명반을 골라준답시고 이것저것 들춰보다가 제 버릇 개 못 주고, 내가 챙겨온 것이 위 음반이다.
타란툴라(tarantula)는 이탈리아 남부산 독거미. 지금은 전설로 남았을 뿐이지만 거미의 독에 쏘이면 보이는 다양한 발작 증상은 15∼17세기 유럽에서 숱하고 요란한 의학 처방을 낳았는데 대개 음악을 통한 치유다. 근 300년 동안 이 ‘치료약’이 이탈리아 남부에서 스페인에 이르는 지중해 지역 각 지방에서 ‘신토불이’ 정신으로 조제되었으니 ‘타렌텔레’를 음악 장르로 보아도 무방하겠다. 위 음반은 물론 그중 대표적인 것을 골라 원전 악기로 연주한다. 그런데, ‘발작’을 ‘날카로운 박자’로 맞상대, ‘이열치열’하던 타렌텔레가 어찌하여 제 속도를 늦추면서 점점 엄숙과 비장, 그리고 죽음을 머금는가. 음악은 자신의 ‘소리의 육체’로, 인생 자체를 치유하려는 것인가. 죽을 때까지 춤을 추는 <봄의 제전> 신화가 정작 기나긴 삶의 무게를 머금으면, 그렇게 되는가. 김정환/ 시인·소설가 maydapoe@thrun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