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 다가오고 있다. 바야흐로 월드컵 무드다, 라고 쓰려고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닌 것 같아서 말을 바꿨다. 광적인 축구 팬이 아닌 탓에 혼자 국민적 열기를 못 느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돌 맞으려나?). 잘못 말했다가는 다칠지도 모르니 내 경우에 한정시켜 말하자면, 정부와 미디어가 주도하는 열기가 나한테까지는 전달되지 않는 느낌, 먹고살기도 바쁜 데 월드컵에 신경쓸 겨를이 어디 있단 말이냐, 이런 심정이다.
월드컵 개최지 국민으로서 바람직하지 못한(?) 내 자세를 새삼 들먹인 건 이번에 소개하는 <우정의 그라운드> 때문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축구 애니메이션이다. KBS 미디어와 드림키드넷이 기획한 <우정의 그라운드>는 KBS2TV를 통해 매주 목요일 오후 5시30분에 방영되는 26부작 시리즈. 지난 2월21일 첫방영을 시작한 이 작품은 일본 <NHK BS2>에서 매주 월요일 6시 <킥 오프 2002>란 제목으로 동시에 소개되고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함께 전파를 타고 있지만 기획과 제작, 투자 일체는 한국이 담당하고 있다.
어느 작품이 그리 쉽게 나오겠냐마는 <우정의 그라운드>는 방영까지 유독 굴곡이 많았다. 애초 KBS 미디어와 기획을 추진하던 나이트스톰미디어가 여러 사정으로 문을 닫았고, 기획을 이끌던 김대중 감독이 각종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나이트스톰미디어의 스탭들이 다시 모여 드림키드넷을 설립하는 동안 KBS 미디어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획을 이끌었고, 손오공이 투자를 결정하면서 빛을 보게 된 것이다.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라는 시류에 맞춰 제작된 작품인 만큼 <우정의 그라운드>에는 두 나라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일단 무대는 이탈리아다. 18살의 한국인 강찬은 이탈리아의 아마추어 축구팀 몬테로저에 국비로 유학 온다. 매사 자신만만하고 강인해서 팀은 물론 작품 전반에서 든든한 역할을 한다. 강찬이 확고한 목표의식으로 축구에 임하는 반면 같은 팀에 소속된 일본인 주인공 겐이치는 ‘재미’로 축구를 한다. 실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매사 무심하고 시니컬한 그는 과연 축구가 자신의 길인지 한동안 방황한다. 팀에서 함께 따돌림당하기도 하고, 고민도 함께하면서 친해진 두 사람이 장차 이야기의 흐름을 주도한다. 각각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와 미드필더. 그러나 팀 플레이인 축구에서 두 사람만 돋보여서는 안 될 일. 같은 팀에 소속된 포워드이자 주장인 벨페로와 미드필더인 파오로 역시 주요 캐릭터다.
인간적 결함을 지닌 등장인물들은 함께 울고 웃으면서 팀워크를 다져간다. 여기에 히로인으로 등장하는 겐이치의 여동생 미키도 눈여겨보자. 결국 강찬과 겐이치는 각자 고국으로 돌아가 대표팀 선수로 활약하게 되는데, 두 사람의 승부가 어떻게 끝날지 궁금하다(설마 무승부는 아니겠지?).
를 비롯해 해외 작품의 경험이 많은 김대중 감독이 이끄는 만큼 <우정의 그라운드>에서 눈에 띄게 어색한 부분은 없다. 유려한 움직임과 이야기 전개는 감독의 축적된 경험이 아니면 지켜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곳곳에서 효과를 발하는 컴퓨터그래픽 합성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충분한 로케이션과 동작 연구가 아쉬운 건 사실이다. 유독 힘든 산고가 아니었다면 커버됐을 테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담당 작품 주제가의 작사를 도맡아하던 KBS 미디어 이원희 프로듀서가 이번에도 펜을 잡았다. 그의 작사가 일본에 그대로 소개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월드컵 취재를 위해 몇년 전부터 한국어를 배우고 있거나, 월드컵 후원사 마크가 찍힌 새 명함을 자랑스레 내미는 일본인 친구들에 비해 열정이 모자랄지는 몰라도, 월드컵이 시작되면 나 역시 목 터져라 한국을 응원할 거다. 다만, 종로 길거리에서 떡볶이를 먹을 수 없는 것은 유감이다. 떡볶이 돌리도! 김일림/ 월간 <뉴타입> 기자 illim@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