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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선 버터플라이 (Numb, 2002)
2002-03-14

식민지 음악인의 처연함이여

‘성기완’이 한 멤버로 있는 3호선 버터플라이의 음반에 대해 ‘신현준’이 글을 쓰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일이다. 성기완도, 신현준도 금시초문인 사람이거나, 성기완을 성시완으로 오해하고 신현준을 영화배우로만 알고 있는 사람이거나, 신현준과 성기완이 <씨네21> 지면에서 ‘본업’과는 거리가 있는 글을 써대는 존재로 알고 있는 사람이 이 글을 읽으면 얼토당토않은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더 절망적이다. 어쩌면.

성기완도 신현준도 대단찮은 것은 분명하고 그건 본인들도 안다. 물론 성기완은 음악을 직접 만드는 사람인 반면, 신현준은 남이 만든 음악을 듣고 구시렁대는 사람이므로 성기완은 신현준보다는 대단하다. 그렇지만 둘 다 별볼일 없는 이유는 그들이 ‘제3세계 아시아의 록 폐인’이기 때문이다. 아시아라도 ‘제3세계’만 아니었더라도(일본처럼), 혹은 제3세계라도 ‘아시아’만 아니었더라도(라틴아메리카처럼) 혹은 제3세계 아시아라도 ‘록음악’에 목매지만 않았다면 이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필이면 지지리도 못살던 나라에서, 그것도 서양에서 가장 멀다는 ‘극동’에 태어나서 ‘풍요의 시대 서양의 청년문화’인 록음악에 지금까지도 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이런 질문은 잊어버리는 게 속편하다. 실제로 많이들 잊어버리고 있다. 그런데도 성기완은 아직도 이걸 물고늘어진다. 그의 삶이, 음악이 신산스럽다 못해 때로 궁상스러워 보이는 이유다. 그건 ‘울트라쿨’한 마니아들이 3호선 버터플라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울트라파퓰러’한 보통 음악 팬들은 3호선 버터플라이에 무관심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말을 직접 인용하면 ‘구호물자 떨어진 것으로 시작한 것’이 한국 록의 조건이다. 그래서 미군 전투기가 아프가니스탄을 개박살내는 동안에도 그는 미제(美製) 레코딩 장비를 앞에 두고 <식민지> <빛나는 K>에서 ‘그런지 톤’의 너저분한 기타 노이즈를 만들고, <엄마 우린 왜 어지러워요>나 <여행은 어땠니>에서 ‘앰비언트’풍의 지루한 전자음향을 도입하고, <광합성>과 <Oh! Silence>에서 ‘뽕끼 없는’ 단아한 멜로디를 만드려고 애썼을 것이다.

성기완뿐만 아니라 나머지 두 멤버인 남상아와 김상우도 만만치 않다. 전자음향으로 ‘드럼 루프(loop)’를 만들어내고 그 위에서 흐느적거리면서 노래부르는 남상아나 “호화롭던 겨울밤 하늘”이라는 가사로 시적 처연함을 만들어내는 드러머 김상우도 이제는 ‘요즘 젊은애들’ 같지 않다. <엄마 우린…>과 <여행은 어땠니>에서 국악기인 해금소리를 삽입한 것도 ‘록과 국악의 퓨전’이라든가 ‘동양과 서양의 해후’라는 입에 발린 평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다. 해금소리가 전자적 노이즈에 짓눌려 있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건 나만의 ‘오버’일 공산이 크지만, 어쨌든 이런 소리가 ‘양악’(洋樂)인 록음악의 반항의 제의(祭儀)와도 국악의 신명나는 한풀이와도 한참 거리가 멀다는 점만은 분명하다.‘그래서 어쨌단 말이냐’라고 묻는다면? 게다가 로큰롤이 처음 전파될 무렵의 미국은 구호물자를 거저 나누어 주었지만, 지금은 전투기를 ‘돈 내고 사라’고 말하고 있는 게 지금의 상황이라면? 이들의 대답은 슈만의 멜로디를 영등포시장의 거리의 소음이 뒤덮는 것이다. 엿먹으라는 이야기인가, 우리가 엿먹었다는 이야기인가. 어쨌든 우리 주위에는 “아주 귀여운 내 마음은 니 넓은 땅덩이의 식민지”라는 가사를 듣고 ‘요즘 같은 상황에서 말 한번 시원하게 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다수’일 텐데… 어찌까? 신현준/ 음악에세이스트 http://homey.w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