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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 O.S.T
2002-03-14

검은 자존심 둘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영화의 긴 서두는 소니 리스턴과 캐시어스 클레이의 타이틀 매치를 중심으로 유색인 전용 버스와 어린 시절, 말콤 X의 설교 등이 전설적인 흑인 가수 샘 쿡의 콘서트 장면과 한데 버무려진다. 샘 쿡 자신의 노래가 아니라 데이비드 엘리어트가 다시 부른 노래가 나오긴 하지만, 이 여러 시간대의 알리를 받쳐주는 음악으로 샘 쿡의 걸작 <Bring It Home to Me>가 흐르도록 한 것은 당연한 선택이다.

스물두살의 알리(클레이)가 골리앗 같이 거대한 소니 리스턴을 때려눕히는 기적의 순간이 다가올수록 점점 고조되는 이 노래의 주인공 샘 쿡은 흑인의 ‘자존심’ 중 하나이다. 불세출의 음색을 가졌을 뿐 아니라 애절하면서도 신명이 담긴 멜로디를 끝도 없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이 천재 가수는 솔 가수가 되기 전 이미 십대 시절에 전 미국을 휩쓴 가스펠 가수였다. 그 인기를 등에 업고 솔 가수로 데뷔한 그는 리듬 앤 블루스를 재정의했다. 그 이후 솔은 더이상 걸쭉한 막걸리 같은 길거리 음악이 아니었다. 대신 맑고 정확하면서도 흐름이 더할 나위 없이 자유로운 목소리로 소화해내는 격조 높은 음악이었다. 말끔한 외모와 쫙 빼입은 그의 양복과 함께 흑인음악의 위상은 한 단계 높게 조절되었다.

그는 그래서 흑인의 고귀함을 상징하는 한 아이콘이 되었고 그와 더불어 1960년대의 도시적인 솔이 메이저 팝 시장에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는 음악뿐만 아니라 자신의 레이블을 운영하는 사업가로, 또 흑인 인권운동에 관심을 갖는 사회운동가로 활동범위를 넓혀나가서 흑인 대중의 존경을 받기도 한 인물. 술집에서 총에 맞아 죽은 비극적인 최후만 빼면, 그는 리듬 앤 블루스 역사상 가장 귀족적인 풍모를 보여준 가수이다.

그런 그와 알리는 1960년대 흑인 대중 속에 ‘검은 것은 아름답다’는 의식이 광범위하게 자리잡도록 하는 팝적인 계기가 되었다. 마이클 만 감독은 그래서 긴 호흡의 도입부를 샘 쿡의 음악으로 완전히 바르고 있다.

오리지널 스코어는 피터 벅(Peter Bourke)이 담당하고 있다. 그는 이 사운드트랙을 아카데미 후보에 올렸다. O.S.T에는 현재 최고 인기의 리듬 앤 블루스 가수인 R. 켈리의 주제가를 비롯, 이번 그래미에서 가장 주목받은 신인이 된 알리시아 키즈의 새로 지은 노래가 들어 있다. 이 노래들은 가스펠적인 분위기로 만들어져 약간은 경건한 분위기이다. 그와 더불어 추억의 옛 솔 넘버들이 배치돼 있는데, ‘부커 T와 MGs’와 함께 부른 알 그린의 노래, 그리고 전설적인 솔 가수이자 가스펠 가수인 아레사 프랭클린의 노래 등이 귀에 들어온다.

이와 같이 구성된 음악은 흥미로운 대목이 좀 있으나 전체적으로 볼 때 다큐멘터리적인 사실감이 극적인 구성의 박진감과 제대로 섞인 영화라고 할 수는 없다. 흑인, 좀더 직접적으로는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무슬림 알리와 링에서 상대방을 때려눕히는 챔피언 알리, 그리고 미인에게 시선을 빼앗기는 떠버리 알리가 서로 따로 논다. 그것들을 연결해주는 내면적인 끈을 발견하기 위해 필요한, 알리의 인간성 속에 좀더 깊이 천착해 들어가는 시선이 아쉽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