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초이스 > 도서
나는 인간으로 살겠다 <인조인간 키카이더>
2002-03-14

anivision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관한 한 ‘왕국’이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인 ‘일본’에서는 최근 이 두 분야의 시장이 점차 감소하는 추세다. 주소비층인 어린이와 청소년층의 감소, 여타의 엔터테인먼트적 요소의 증가 같은 요인도 무시할 순 없지만, 무엇보다 큰 원인은 <드래곤 볼> <슬램덩크> <에반게리온> <세일러문>으로 대변되는 1990년대 황금기의 거품이 꺼진 뒤 ‘대박’이라 불릴 만한 히트작의 부재다.

이러한 시장축소에서 나온 제작경향은, 일정 수의 고정팬을 가지고 있고 자금력이 있는 중장년층의 소비자를 유인해낼 수 있는 ‘리바이벌’ 붐이다. 이러한 붐의 최대 수혜 작가는 <마징거 Z>와 <게타로보> 등 ‘거대 로봇물’의 아버지인 나가이 고와 <파워레인져> <백터맨> 같은 이른바 ‘특촬물’의 개화기를 장식한 <가면 라이더> <레인보우 전대> 등의 창시자 이시노모리 쇼타로일 것이다.

<마징거 Z> <그레이트 마징거> <그렌다이져> 등으로 한국에서도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나가이 고에 비해 특촬물로 제작된 이시노모리의 작품들은 국내에서는 접할 기회가 극히 드물었다(그의 작품 중 애니메이션 시리즈 최대의 히트작인 <사이보그009>조차 한국에서 단편으로밖에 소개되지 않았다). 필자도 70년대 해적판으로 출시된 그의 만화를 보고 팬이 됐고, 그중 제일 깊이 인상에 남았던 것 중 하나가 <키카이더>였다. ‘양심’을 가진 인조인간 ‘지로’(키카이더)가 주인이 내리는 명령을 거부할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을 습격해오는 적들과 싸우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모습과 몸체 부분부분 내부 기계가 비치는 독특한 디자인 등으로 상당히 오랫동안 기억에 남은 작품이었다. 그뒤 1972년에 특촬물로 제작된 버전을 보기에는 시간적, 공간적 제약은 물론이거니와 중년의 드럼통형 허리를 지닌 주인공이 펼치는 액션신들을 보다가는 자칫 작품에 대한 감정이입이 제대로 이루어질 것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리바이벌’ 붐 덕분에 2000년 12월부터 TV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키카이더>는, 탄생 20주년을 맞이한 2002년에 제작 완료된 후속작 OVA <키카이더01>에 이르기까지 원작의 작품세계를 충분히 살려주면서 작품에 또 다른 생명력을 부여해주고 있다. 오토모 가쓰히로의 복귀작이었던 <메모리스>의 2번째 이야기인 ‘체취병기’를 연출한 오카무라 아마토키 감독을 비롯해 <마법기사 레이어스>와 등의 작품에서 활약한 곤노 나오유키가 참여하고, <나그네 겐신> 같은 화제작들을 제작한 소니 비주얼 웍스가 제작을 맡아 ‘자아’를 찾아가는 인조인간 ‘키카이더’의 모습을 되도록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수작 애니메이션을 팬들에게 선사할 수 있게 됐다.

미형(美形) 캐릭터에 좀 멍한 성격만 지니면 인간처럼 지낼 수 있는 요즘의 ‘인조인간’ 캐릭터와는 달리 자신의 불완전성에 대해 항상 고뇌하면서도 어느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려는 인조인간의 비애와, ‘키카이더’의 제조자인 교무묘우지 박사의 딸 미쓰코가 ‘터부’의 장벽을 뛰어넘어 주인공을 사랑하게 되는 모습은, 비슷한 소재를 차용한 어떤 작품보다도 더 선명하게 인간에 대한 존재가치나 양심에 대해 자문하게 해준다.

이시노모리 작품의 특징 중 하나는 작품 중간중간에 그의 다른 작품의 주인공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점이다(실제로 키카이더의 원작만화에서도 사이보그009가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이러한 카메오 출연으로 그의 작품세계는 연장되고 확장되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현재 한국 애니메이션의 ‘리바이벌’적 요소는 거의 <로보트 태권V>에 집중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70∼80년대 시절 보았던 작품은 <로보트 태권V>만이 아니다. 제발 <황금날개>나 <전자인간337> <소년007> 같은 작품의 제작소식도 들어봤음 하는 바람이다. 김세준/ 만화 애니메이션 칼럼니스트 neoeva@hitel.net